“영미, 영미, 영미”, “영미 헐”, “영미 업”, “영미 워”. ‘영미’는 모두의 구호였다. 바람이고 희망이고 끈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됐다.
몰라서 알쏭달쏭할 틈이 없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의 문법은 빠르게 스며들었다. 같은 마음을 담게 하는 주문이고 응원이었던 것이다. ‘영미’는 친구 이름이 아니라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었다. 서로를 이어 주고 만나게 해 주는 통로였다. 평창올림픽 슬로건인 ‘하나 된 열정’도 가져다주었다.
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했던 북측 대표단이 지난 27일 ‘출경’했다. 외국의 대표단은 ‘출국’했다. ‘출국’은 낯익고, ‘출경’은 낯설었다. 국어사전에는 ‘서울을 떠난다’는 말인 ‘출경’(出京)이 첫 번째로 보인다. 그런데 북측 대표단의 ‘출경’은 이 ‘출경’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간다’는 ‘출경’(出境)이다. 평소 쓰임새가 드문 이 표현은 어색하게 다가왔다. 어딘가 서투르게도 보였다. 북측 대표단이 올 때 쓰인 ‘입경’(入境)도 그랬다.
북측 대표단이 남쪽으로 오는 행위는 ‘방남’(訪南)이었다. 우리가 북쪽으로 갈 때는 ‘방북’(訪北)이 됐다. 서로 마주하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는 북쪽을 ‘북한’이라고 하고, 북쪽은 우리를 ‘남조선’이라고 한다. 달가운 말일 수 없다. 하나가 되면 불필요해질 말들이다. 분단은 말도 편치 않게 만든다.
wlee@seoul.co.kr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했던 북측 대표단이 지난 27일 ‘출경’했다. 외국의 대표단은 ‘출국’했다. ‘출국’은 낯익고, ‘출경’은 낯설었다. 국어사전에는 ‘서울을 떠난다’는 말인 ‘출경’(出京)이 첫 번째로 보인다. 그런데 북측 대표단의 ‘출경’은 이 ‘출경’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간다’는 ‘출경’(出境)이다. 평소 쓰임새가 드문 이 표현은 어색하게 다가왔다. 어딘가 서투르게도 보였다. 북측 대표단이 올 때 쓰인 ‘입경’(入境)도 그랬다.
북측 대표단이 남쪽으로 오는 행위는 ‘방남’(訪南)이었다. 우리가 북쪽으로 갈 때는 ‘방북’(訪北)이 됐다. 서로 마주하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는 북쪽을 ‘북한’이라고 하고, 북쪽은 우리를 ‘남조선’이라고 한다. 달가운 말일 수 없다. 하나가 되면 불필요해질 말들이다. 분단은 말도 편치 않게 만든다.
wlee@seoul.co.kr
2018-03-01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