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조용한 일/김사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조용한 일/김사인

입력 2016-08-26 22:20
수정 2016-08-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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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시인이 되고 나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언제 시적인 영감이 떠오르느냐?’는 것이다.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진 분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영감으로 시를 쓰지 않아요’라고 답해 드린다.

‘조용한 일’은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장면이 가장 자연스럽고도 솔직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이렇듯 시적인 상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려다 그만두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고 또한 시적인 순간은 어떤 거대하고 장엄한 풍경에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쓸쓸하게 비어 있는 장면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무엇인가 귀하고 특별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부한 삶 속에서 터져 나온 마음의 잔해다.

사람의 기억에는 특별한 일보다, 잘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의 ‘조용한 일’들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타인을 미워할 때에는 특정한 사건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어떤 타인을 좋아하게 된 것에는 특별한 연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우리의 주변에는 그래도 미운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그 좋은 사람들의 곁에서 한참을 말없이 그냥 있어도 좋을 계절이 오고 있다. 이것 역시 고마운 일이다.

박준 시인
2016-08-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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