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총기사고는 정신건강 탓”… 생존 학생 “부끄러운 줄 알라”

트럼프 “총기사고는 정신건강 탓”… 생존 학생 “부끄러운 줄 알라”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8-02-18 23:14
수정 2018-02-1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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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명 사상 난사범 정신이상 징후

트럼프 행정부, 작년 구매제한 폐지
시민 수천명 총기안전법 입법 집회
“정치인 NRA 기부금 그만 받아야”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 곳곳에서 또다시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이번에도 사건의 본질을 범인의 ‘정신건강’ 탓으로 돌렸다가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무엇이 내 친구를 죽였나
무엇이 내 친구를 죽였나 1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법원 청사 앞에서 주민들이 ‘돈이 우리 친구들을 죽였다’, ‘우리 친구들은 무엇 때문에 죽었나’ 등의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총기 규제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지난 14일 한 퇴학생의 총기 난사로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학생 등 1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포트로더데일 로이터 연합뉴스
AP통신은 17일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법원 앞에서 시민 수천명이 총기안전법 입법을 지지하는 집회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은 총기 규제에 소극적인 정치인 등을 비난했다.

특히 이번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 에마 곤살레스(18)는 눈물의 연설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곤살레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전국총기협회(NRA)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점을 겨냥한 듯 “NRA로부터 기부를 받은 모든 정치인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쳤다. 이어 “우리가 이런 총기 참사의 마지막이 될 것이며 우리는 법을 바꿀 것이다”고 했다. 이에 시위 참가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한목소리로 화답했다.

총격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이 총격범의 정신건강을 탓하며 급우와 이웃들이 이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힐책성 글을 올린 데 대해 “우리는 신고했다. 그가 중학생일 때부터 몇 번이고 계속했다”고 반박했다.

전날 밤에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NRA 본부 앞에 100여명이 모여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자유로운 총기 소유를 주장하는 회원수 420만명의 NRA는 공화당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앞서 플로리다주 경찰은 파크랜드시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지난 14일 오후 2시 30분쯤 이 학교 퇴학생 니컬러스 크루스(19)가 AR15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17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다른 학생을 폭행한 혐의로 퇴학당한 크루스는 경찰 조사에서 “악령의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크루스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로 평소 폭력적 성향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크루스는 범행 개시 직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권총으로 자신의 얼굴을 겨눈 사진을 올리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크루스가 지난해에도 학생들을 위협했으며, 학교 측이 총기 사고를 우려해 그가 배낭을 메고 학교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크루스가 범행에 사용한 총기 등 5정을 지난 1년 사이에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느슨한 총기 규제가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정했던 정신질환자 총기구매 제한법을 지난해 폐지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인사들은 15일 일제히 총기 규제 입법을 강하게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번 사고를 초래한) 정신 건강 문제와 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6명이 숨진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인근 교회 총기 난사 사건 직후에도 “총기 문제가 아닌 범인의 건강 문제”라고 규정한 바 있다.

벳시 디보스 교육장관도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학교들은 교사들을 총기로 무장시킬 선택권이 있다”고 되레 교사의 총기 무장을 해법으로 제시해 논란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이 악화되자 16일 파크랜드시를 직접 방문해 부상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공화당 일각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플로리다의 부동산 사업가이자 공화당 전국위원회 재무위원장을 맡았던 앨 호프먼 주니어는 자신이 후원하는 공화당 지도부에 “공격용 총기 규제 법안을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에게는 후원금을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18-02-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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