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보도…北원유밀매 도운 선박 소유주, 미 제재대상 회사 5곳 등 홍콩 소재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장소’로 불리는 홍콩을 이용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세계 각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는 가운데 홍콩의 사업등록 절차 등이 쉽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 취재 결과 지난 2월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고 북한의 원유 밀매를 지원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지목한 한 선박의 소유주는 홍콩 완차이 지구에 주소가 등록된 하파 국제무역(HaFa Trade International Co.)이다.
그러나 정작 이 회사의 등록 주소지로 찾아가 보면 당국에 사업등록을 도와주는 대행업체 사무실만 있다.
홍콩에선 이런 사례가 드물지 않다. 홍콩에선 빠르면 하루 만에도 사업자 등록이 가능하며 요구하는 서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24시간 내 법인 등록’, ‘셸프컴퍼니(shelf company, 팔기 위해 만든 회사)’ 등을 제공한다는 사업등록 대행업체의 광고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업체에 기본적인 신원 자료만 이메일로 보내도 회사를 사거나 세울 수 있다.
이 때문에 홍콩은 최근 북한 유령회사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미국이 지난 2월 북한을 위해 일한 혐의로 자체 제재한 기업체 9곳 중 5곳이 홍콩에 주소를 뒀다. 나머지는 중국(2곳), 파나마(1곳), 싱가포르(1곳) 순이다.
WSJ에 따르면 대부분 중국에 있는 북한 공작원들은 이 같은 유령회사를 내세워 자신들의 신분을 세탁하고 북한과의 관련성을 숨긴다.
북한은 대행업체를 이용해 유령회사를 세운 뒤 은행 계좌를 개설해 거래를 진행하고 거래가 끝나면 다시 회사를 닫아 당국의 추적을 피한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법무법인 클리포드 챈스 아시아지부의 웬디 와이송 대표는 “유령회사를 설립한 이들은 매우 숙련된 이들로, 홍콩의 기업 친화적 규제와 금융 환경을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는 이에 따라 자금 세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규정을 내달 발효하기로 했다. 기업 등록 서비스 지원 업체에 더 엄격한 신원 확인 절차를 밟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홍콩 정부 대변인은 “탄탄하고 효율적인 감독 시스템이 있다”며 “북한과 연계된 의혹이 있는 홍콩에 등록된 기업 사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련 규정 개정만으로 북한의 유령회사 설립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새 규정에서도 창업 주주의 주소와 임원의 국적 증명 문서 번호만 서류에 추가 기재하면 된다.
또한, 등기 임원이 유일한 주주여도 되고 홍콩에 거주할 필요도 없다. 법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은 나머지 등록 업무를 처리해줄 수 있고, 이 모든 절차는 온라인으로 처리 가능하다.
여전히 허점을 이용해 홍콩에 유령회사를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WSJ가 하파 국제무역 주소에 있던 대행업체의 본사 등을 통해 추적한 결과, 하파 국제무역의 등록 서류에 등장한 유일한 주주이자 임원의 주소는 중국 허베이 성의 외진 마을인 야오싱으로 확인됐다.
정작 이 주소에는 유리창이 부서지고 마당에는 양배추만 웃자란 빈집만 있었다. 마을 주민을 통해 연락이 닿은 집주인은 자신이 중국 선박에서만 근무한 “평범한 선원”이며 하파 무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연 소득이 8천~9천500달러 수준이어서 자신 명의의 선박을 가져본 적도 없고, 홍콩에 가보거나 북한 무역과 관련이 있었던 적도 없었다는 이 남성은 2016년 상하이항에 정박할 때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며 명의도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과 유엔도 북한의 이런 불법 행위를 인지하고 있다. 유엔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자금줄을 끊기 한 제재 실행에 있어 홍콩의 등록 중개업체들이 “주요 취약점”이라고 지목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