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60년 만에 확인된 재불 독립운동가의 삶

60년 만에 확인된 재불 독립운동가의 삶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8-10-30 22:30
업데이트 2018-10-30 23:0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프랑스 임시정부 독립자금 지원한 인물
항일투쟁 활동 인정 못 받고 60년 타계
차남 장자크씨 증언·유품서 공적 드러나
이미지 확대
재불 독립운동가 고(故) 홍재하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인정을 돕고 있는 브르타뉴 한인회장인 김성영(앞줄 오른쪽) 렌 교수 등 현지 동포들이 30일 홍 선생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안(앞줄 가운데)과 그의 부인 아나이크(왼쪽)와 함께 자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생브리외(프랑스) 연합뉴스
재불 독립운동가 고(故) 홍재하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인정을 돕고 있는 브르타뉴 한인회장인 김성영(앞줄 오른쪽) 렌 교수 등 현지 동포들이 30일 홍 선생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안(앞줄 가운데)과 그의 부인 아나이크(왼쪽)와 함께 자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생브리외(프랑스)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일제에 맞선 조국의 저항운동을 돕던 독립운동가 홍재하(1898∼1960) 선생의 삶이 그의 사후 60년 만에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이미지 확대
재불 독립운동가 고(故) 홍재하 선생이 1943년 차남 장자크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
재불 독립운동가 고(故) 홍재하 선생이 1943년 차남 장자크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
홍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러시아와 북해를 거쳐 프랑스에서 임시정부 인사들을 돕고, 독립자금을 지원했지만 그 공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그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30일(현지시간) 홍 선생의 2남 3녀 중 차남 장자크 홍 푸안(76)에 따르면 아버지 홍재하는 1898년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서 태어나 1913년 만주를 거쳐 러시아 무르만스크로 건너갔다. 그는 1919년 전후 프랑스로 건너간 재불 동포 1세대로, 첫 프랑스 한인단체 ‘재법한국민회’ 결성에 참여해 2대 회장을 지냈다. 그는 1920년 프랑스에서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열었고, 현지에서 번 돈을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에 보탰다.

홍 선생은 1920년대 프랑스인 여성과 가정을 꾸린 후에도 독립운동자금을 보냈고, 해방 후 처음 설치된 주불 대한민국 공사관 체류 문서에 “국속을 복슈허고. 지구상 인류에 평등허기를 위허여”라고 적었다. ‘국속’을 ‘國束’으로 읽는다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것에 복수하고 인류 평등에 공헌하고자’는 뜻으로 풀 수 있다.

오매불망 고국행을 꿈꾸던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비탄에 빠졌고, 1960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차남 장자크는 증언했다. 하지만 홍재하는 사후 60년을 앞둔 지금까지 독립운동과 관련한 어떤 인정도 받지 못했다. 장자크가 사는 프랑스 소도시 생브리외가 속한 브르타뉴 지방 한인회장인 김성영·송은혜 교수 부부 등이 홍 선생이 남긴 유품 기록들을 정리 중이다.

장자크는 “부친이 눈을 감으신 지 60년이 돼 가는데 이미 너무 늦은 것 아닌가. 그래도 아버지가 끝내 못 이룬 고국행이 지금이라도 꼭 이뤄지면 좋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생브리외(프랑스) 연합뉴스
2018-10-31 31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