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길섶에서] 적멸(寂滅)/이두걸 논설위원

[길섶에서] 적멸(寂滅)/이두걸 논설위원

이두걸 기자
이두걸 기자
입력 2019-01-07 20:28
업데이트 2019-01-08 02:03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님 순환기내과 진료예약이 1월 4일(금) 09시 40분 있습니다.”

며칠 전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선친(先親)의 병원 예약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다니던 병원에는 부음 소식을 따로 전하지 않았으니 환자의 부재를 알 리가 없다. 오래전부터 선친은 거동이 불편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언덕배기는 중학생 아들의 부축을 받고서야 오를 수 있었다. 베트남 정글에서 모기를 쫓는다고 머리 위로 들이부은 고엽제는 천천히 신경과 면역체계를 갉아먹었다. 몇 해 전부터는 운전대도 놓아야 했다.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하는 사이 갓난쟁이 손주들은 어느새 당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주말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찾았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그곳을 찾은 유일한 이유는 ‘고요하게 꺼진다’는 뜻의 ‘적멸’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등산로에는 염불과 목탁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불자(佛子)들은 서너평 남짓한 공간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합장한 채 절을 올리고 있었다. 순간 부러웠다. 마지막 순간에 삶의 의지와 체념 중 무엇을 선택했을까. 석양을 뒤로한 채 다리를 절뚝이며 내려왔다.

2019-01-08 29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