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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도 다닐 수 있는 길이었는데… 돌변한 날씨에 ‘속수무책’

초등생도 다닐 수 있는 길이었는데… 돌변한 날씨에 ‘속수무책’

이천열 기자
이천열, 남인우, 박기석, 윤연정 기자
입력 2020-01-19 23:50
업데이트 2020-01-20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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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실종 교사 4명 수색 난항

쉬운 코스였지만 악천후로 눈사태 발생
거리 두고 뒤따르던 나머지 5명은 대피
외교부 신속대응팀 급파… 구조작업 최선

충남교육청 비용 80%·교사 20% 부담
‘17→15일’ 산행 날짜 발표도 오락가락
일각선 “연수 가장해 단체관광”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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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교육 봉사활동에 참가한 충남도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가운데 2팀 단장인 A씨가 공항에서 현지 상황에 대해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네팔 교육 봉사엔 충남교육청 소속 3개 팀이 파견됐으며, 현지 일정을 모두 마친 2팀은 이날 오전 5시쯤 귀국했다. 연합뉴스
네팔 교육 봉사활동에 참가한 충남도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가운데 2팀 단장인 A씨가 공항에서 현지 상황에 대해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네팔 교육 봉사엔 충남교육청 소속 3개 팀이 파견됐으며, 현지 일정을 모두 마친 2팀은 이날 오전 5시쯤 귀국했다.
연합뉴스
“눈밭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얼마 안 떨어진 앞쪽 산에서 거대한 눈덩이가 쏟아져 내려 급히 피했습니다. 앞서 가던 교사 일행 4명은 보지 못했어요. 같이 걷던 동료 교사 5명, 네팔인 가이드 2명과 로지(대피소)로 대피해 있다가 헬기가 와 안전지대로 이동했습니다.”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트레킹 도중 눈사태로 실종 사고를 당한 충남도교육청 해외 교육봉사단 3팀 교사들과 함께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섰다 변을 피해 네팔에 머물고 있는 한 교사는 19일 도교육청 관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3팀 11명 중 4명이 실종됐고, 이 교사를 포함한 생존자 7명은 아직 현지에 체류하고 있다.

지난 7일 출국했던 2팀은 이날 오전 5시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서둘러 귀국했다. 2팀 교사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날씨가 좋았고 초등학교 2, 3학년 학생들도 평범하게 다닐 수 있는 트레킹 길이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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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실종 한국인 교사 4명을 찾는 수색 작업이 사흘째 이어졌으나 실종자를 찾지 못한 채 종료됐다. 외교부와 주네팔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네팔 구조 당국은 이날 육상·항공 수색을 진행했으나 오후 3시 실종 현장에서 눈사태가 발생해 수색대가 현장 철수 후 긴급 대피했으며 1시간 후쯤 작업을 종료했다. 수색 작업에는 현지 경찰과 주민 총 30여명, 3개팀으로 구성된 수색대와 헬리콥터가 투입됐다. 현장 인근에는 4~5m 높이의 눈이 쌓여 있고 사고지점이 계곡이라 수색에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색대는 실종 현장에서 도보 30분 거리의 산장에서 머무르다 20일 수색을 재개할 계획이다.

외교부는 이날 네팔에 2차 신속대응팀 2명을 파견했다. 전날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 1차 신속대응팀과 실종자 가족 6명 등은 주네팔 대사와 함께 이날 실종 현장에서 가까운 도시인 포카라로 이동했다.

사고는 지난 17일 오전 10시 30분쯤(현지시간) 터졌다. 지난 15일 시누와(해발 2340m)에서 하룻밤을 묵은 봉사단 11명 중 컨디션이 좋지 않은 2명을 제외한 9명이 이튿날인 16일 데우랄리(해발 3230m)까지 가서 잠을 잤다. 이들은 17일 아침 한국인이 많이 가는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코스로 더 올라가려다 갑자기 기상이 악화돼 하산을 결정했다. 좋던 날씨가 엄청난 폭설과 폭우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앞서가던 이모(56)씨 등 한국인 교사 4명과 네팔인 가이드 2명이 눈사태를 만나 사고를 당했다. 사고 장소는 데우랄리와 해발 2920m 지점인 히말라야 로지 사이로 알려졌다. 나머지 교사 5명과 네팔인 가이드는 꽤 먼 거리를 두고 뒤따라가면서 화를 면했다.

3팀의 사고는 방문 학교 휴교로 봉사 대신 트레킹부터 나서며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파악돼 ‘엉터리 행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레킹과 봉사 비율이 6대 4로 트레킹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프로그램 자체도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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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계획서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3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 포카라와 간드루크로 이동한 뒤 비렌탄티 학교 등을 방문해 15~16일 교육봉사 활동을 벌인 후 17일부터 트레킹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15일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 앞서 충남교육청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실종 교사들은 17일 시누와를 출발해 데우랄리까지 갔다가 기상 악화로 하산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미 15일부터 트레킹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은복 도교육청 교육국장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잘못을 시인한 뒤 “사후 보고서만으로 평가하다 보니 이런 일이 빚어졌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고 장소와 대피 장소도 처음 발표한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실종자 구조가 우선이지만 인터넷에는 이들의 프로그램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높다. 한 네티즌은 “13일 한국에서 출발해 도착해서 짐 풀고, 교육봉사 활동을 않고 트레킹부터 간 것이 말이 되느냐. 연수를 가장해 물처럼 세금 쓰는 단체관광을 없애야 한다”고 비난했다. 김유태 도교육청 장학관은 “해외 교육봉사 프로그램은 현지 문화를 배우거나 트레킹을 하는 등 자율적으로 계획하는 것이지만 50%까지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 프로그램을 폐지할지, 개선할지 등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충남교육청의 해외 교육봉사 프로그램은 2012년 전국에서 처음 도입돼 여름·겨울방학을 활용해 8년째 하고 있다. 취지는 교육 기부를 통해 낙후 국가 학생들의 배움 욕구를 자극하고 한국 문화를 전달하며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교육청이 비용의 80%, 교사가 20%를 부담한다. 교육청 지원 한도는 1인당 최대 200만원이다. 김유태 장학관은 “비난 댓글이 쇄도하지만 낡은 교실 페인트칠해 주기 등 힘든 일도 많이 해 귀국 후 입원하는 교사도 있다”고 말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서울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서울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2020-01-2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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