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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정윤희는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앵두 같은 입술로 별명은 ‘깜씨’. 윤곽이 뚜렷한, 당시 보기 드문 서구형 미인이다.

해태제과 모델로 대중에게 얼굴을 널리 알리고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활약하며 1970∼198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었다.

‘단군 이래 최고의 미녀’라는 수식어를 차지한 그녀는 세 명 중 미모 원톱이였다.

정윤희는 정진우 감독의 두 작품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1981년과 1982년 잇달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역대 미녀 배우 중 명실상부 가장 성공한 스타가 됐다.

한창 잘나가던 그는 1984년 유부남인 한 건설사 대표와 간통 혐의로 고소돼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다행히 대표의 전처가 고소를 취하해 그해 말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

이후 1993년 남편 회사의 가구 브랜드 TV 광고에 출연하며 오랜만에 얼굴을 비쳤고 2011년 미국 유학 중이던 친아들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예순 살이던 2013년에는 수수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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