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1943년 일제의 학도동원령으로 일본 쓰카다 부대에 강제 징집됐다. 당시 강제 입대한 학도병들은 각 지역에 구축된 공작 거점이나 공작원과의 직접 접선을 통해 개별 또는 집단으로 일본군 병영을 탈출했다. 이때 1944년 장준하, 김준엽과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반에서 군사교육훈련을 받고 제1기생으로 졸업했다. 1945년 1월 말 학도병 탈출 동지 50여명과 함께 충칭으로 건너와 임시정부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광복군 총사령부에 소속되어 광복군 부위(副尉)로서 판공실 부관으로 복무했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을 수행해 국내로 돌아왔다. 백범의 마지막 경위 대장을 지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1999년 1월 제14대 광복회장을 지냈고, 2002년부터 광복회 고문을 맡아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권은애씨와 흥렬(전 서울신문 부사장), 강렬, 혜라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7호실(02-3779-1526)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