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커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판 커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입력 2018-03-11 14:47
수정 2018-03-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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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평화체제 등 북미간 의제 사전 탐색 ‘전초전’ 성격美 CVID ‘구체조치’와 北 ‘비핵화 의지’ 사이서 공통분모 찾기 주력北美 양쪽에 평화체제 논의 제안 가능성…‘항구적 평화정착’ 목표

오는 4월 말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상 처음으로 5월 중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늠해볼 ‘리트머스 시험지’로 부상하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 북측 주요 인사들이 지난 5일 평양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 북측 주요 인사들이 지난 5일 평양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남북관계를 큰 틀에서 복원하고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차원을 넘어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 정상간 ‘합의의 기초’를 다지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꿔 말해 북미 정상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판’을 벌리느냐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은 물론이고 논의 방향과 합의 결과까지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북미 정상이 오는 5월 만남을 갖자는 큰 틀의 합의를 했지만, 회담 테이블에 어떤 의제가 오를지는 아직 물음표다.

다만 최대 쟁점인 북핵 문제가 중심적 의제가 되고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이슈인 평화체제 문제까지도 포괄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북핵과 평화체제 모두 북미 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당사자라는 점이다. 남북미 공통의 이해가 걸린 이슈라면 남북 정상회담은 자연스럽게 북미 정상회담의 ‘전초전’ 성격으로 치러질 수 밖에 없다.

우선 북핵 문제는 가장 큰 대립축을 형성하고 있는 북한과 미국이 ‘실질적 당자가’ 격으로 지칭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고 국제 비확산 체제의 핵심축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북핵 개발에 따른 유무형적 피해를 볼 한국이 당연히 직접적 당사자가 된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에게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이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토록 함으로써, 이미 북핵문제는 남북미(南北美)가 공통으로 다뤄야할 핵심이슈가 됐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6자회담 틀 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해야 하지만, 현재로써는 ‘중재자’인 한국이 북미간 접점을 담아 어떤 ‘밑그림’을 그려주느냐에 따라 논의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으로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이 비핵화 문제를 놓고 공통분모를 마련할 수 있도록 ‘사전정지’ 역할을 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CVID) 비핵화를 강조하는 미국과 비핵화의 ‘의지’만 표명한 상태인 북한이 현시점에서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틀을 만들어내는게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비핵화 의지가 ‘구체적 조치’로 이어지도록 김 위원장을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특별 메시지’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문제 못지 않게 문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평화체제 문제다. 평화체제는 현재의 정전체제를 전환시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다자간 합의의 틀을 의미한다. 바꿔말해 6·25 전쟁을 직접 치른 당사국들이 공통의 의지를 모아 일종의 ‘평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얘기다. 이는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개념의 평화협정보다 논의의 폭이 훨씬 더 큰 상위개념이다.

북한이 그동안 요구해온 평화협정으로 논의를 국한할 경우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미·중이 주도하고 한국이 소외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의 실질적 당사국들이 참여하는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남·북·미·중 4개국은 과거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물론 미사일 이슈로 북미가 다시 대립하면서 무산됐지만, 평화 의제를 논의하는 틀로서 4자회담으로서의 유용성이 매우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항구적인 평화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북미 양측에 평화체제 논의를 제안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게 외교소식통들의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4월 말 만나는 김 위원장에게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하자는 뜻을 밝히고 이를 적극 설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 위원장이 핵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체제 보장’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김 위원장이 받아들일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화체제 논의에는 자연스럽게 북미 상호 불가침 약속과 함께 당사국들이 인위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자연스럽게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연결시켜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포괄하는 큰 틀의 ‘담판’을 짓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주목할 변수는 평화체제 논의가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연계될지 여부다. 이는 한미동맹의 요체(要諦)와 직결된 것으로, 국내정치와 대미관계의 가장 민감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분위기다. 남북한이 추후 통일을 실현하더라도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안전판’으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북측도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와 관련, 김정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찾아온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김 대통령께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사실 제 생각에도 미군주둔이 나쁠게 없다”고 전제하고 “다만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변경돼야 한다”며 “주한미군은 공화국(북한)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한반도 평화의 안정축으로서 주한미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대해 ‘동의’를 끌어낸다면, 이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체제 논의에 나오도록 설득할 가능성이 있다는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큰 틀에서 해결해보려는 문 대통령이 북미간 ‘중재자’ 역할을 넘어 문제해결의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해결사’ 역할도 성공해낼지 전세계 외교가가 주목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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