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미국의 리비아식 해법 수용못하지만 북한의 ‘살라미 전술’도 막아야

청와대, 미국의 리비아식 해법 수용못하지만 북한의 ‘살라미 전술’도 막아야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18-03-30 20:12
수정 2018-03-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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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이 만나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보장을 맞교환하는 포괄식 해법에 무게를 뒀던 청와대가 북·중 정상회담 이후 ‘단계적 비핵화’로 기울기 시작했다. 즉, ‘동결→폐기’라는 2단계 북핵 해법으로의 선회이다. 핵폐기 단계를 조금씩 잘라 보상을 받아온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의심하는 미국을, 큼직하게 잘라 통 큰 타결을 보자고 북한을 설득해야 하는 두 개의 짐을 진 형국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0일 ‘선(先)비핵화 후(後)보상’을 골자로 한 미국의 ‘리비아식 북핵 해법’에 대해 반대하며 “검증과 핵폐기는 순차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중 관계를 회복하고, 핵폐기 단계를 미세하게 나눠 단계별로 보상하는 ‘단계적·동시적 조� ?� 언급하자 청와대도 ‘현실론’으로 옮겨 가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구상한 비핵화 해법은 단계적 비핵화에 가까웠다. 지난해 6월 29일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핵동결을 핵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하면, 핵동결에서 핵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단계에서 서로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결→폐기’라는 2단계 북핵 해법이다. 지난달 25일 평창을 찾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에게 문 대통령은 이 구상을 직접 설명했다.

2단계 북핵 해법에 시동을 걸던 청와대가 북핵 대응 시나리오를 손보기 시작한 건 지난 9일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뒤부터다. 과거 ‘점층법’으로 대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복잡한 매듭을 한 번에 잘라 해결하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일괄타결로 가야 한다는 발언이 청와대 핵심관계자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북·중 정상회담으로 중국이 남·북·미 3각 대화에 뛰어들며 비핵화 판이 복잡해질 조짐이 보이자 30일 이 핵심관계자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이든, 일괄타결이든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을 번복했다.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 국면을 놓치지 않으려면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동상이몽’ 격인 북·미 양국을 어떻게든 중재해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과거 핵무기를 미국에 내줬다 몰락한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본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조건 없는 비핵화’를 주장하는 미국에 핵폐기 단계를 잘게 나눠 단계별 보상을 얻어내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받아들이라 할 수도 없다. 현재 ‘중재자’ 한국이 처한 상황이 이러하다.

청와대는 우선 북·미가 비핵화와 체제보장 원칙에 합의하도록 설득하고, 이후 핵폐기 단계를 ‘동결→폐기’ 2단계로 큼직하게 나눠 보상하는 구상에 다시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정부는 남북 접촉 등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데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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