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EDVARD MUNCH: BEYOND THE SCREAM 이 전시는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를 상징하는 <절규 The Scream>를 넘어 작가의 일생을 돌아보며 그의 회화적 표현주의와
급진적인 실험성을 탐구하는 전시입니다. 뭉크는 일생동안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과 같은 인간의 심오한 감정과 경험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는 에드바르 뭉크를 상징하는 <절규>를 넘어 작가의 일생을 돌아보며 그의 회화적 표현주의와 급진적인 실험성을 탐구하는 전시입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0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안토니오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창단 120주년을 맞은 런던 심포니를 초청하여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런던 심포니는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연주하고 ‘21세기 피아노 여제’로 불리는 유자 왕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4번을 협연합니다.
10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안토니오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창단 120주년을 맞은 런던 심포니를 초청하여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신문, 120년 역사의 발자취
1904
6월 29일
배설(Ernest Thomas Bethell), 토머스 코웬, 양기탁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라는 이름으로 첫 영자신문 시험판을 제작
7월 18일
시험판 제작 이후 배설(초대 사장), 양기탁(총무)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라는 한글 2면과 영문 4면의 총 6면으로 된 2개 국어 합본 신문을 발행. 영문판 제호는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
1907
5월 23일
양기탁과 안창호가 뜻을 모아 국내 최대 항일 민족단체인 ‘신민회’ 본부를 영국인이 대표로 있어
치외법권인 대한매일신보 안에 두고 신민회 기관지를 자임,
5월 23일자부터 새로 한글판을 창간하여 민족계몽 교육운동에 앞장섬. 이로써 대한매일신보는 국한문판, 한글판, 영문판의 3개 신문을 발행.
1910
8월 30일
제호가 ‘매일신보(每日申報)’로 바뀌고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은 계속
이어졌으나(국·한문판 1462호, 한글판 939호) 한일합방 사유를 국민에게 알리는 순종 황제 조칙(詔勅)과 칙유(勅諭)를
1면에 크게 보도하는 등 총독부 입장을 대변하고 일제의 한반도 통치 합리화를 선전하기 위한 황국신민화의 도구로 전락.
1945
11월 22일
해방 후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오세창이 초대 사장으로 취임하며
매일신보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변경. 대한매일신보의 위대한 유산과 매일신보의 아픈 유산을 모두 물려받는다는 취지로 ‘혁신
속간’이라는 소개와 함께 지령 제13738호로 시작. (당시 하루 앞당긴 석간을 발행하여 발간일자는 1945년 11월 23일자)
1946
2월
월간 시사·문화예술 종합지 ‘신천지(新天地)’창간.
광복 후부터 6·25전후에 이르기까지 종합지 중에서 첫손 꼽히는 대표적 중립적 종합지로 만 9년 동안 통권 68호를 발간, 신천지의 국판 크기는 훗날 우리나라 월간지의 판형으로 자리 잡음.
1950
6월 27일
6·25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신문은 26일 6차례, 27일 12차례의 호외를 발행,북한의 남침 및 전황을 알렸고 중앙언론사 중 유일하게
간부진과 사원이 27일 자정까지 회사를 지켰으며 그 중 종군기자였던 한규호와 사장 비서 이승로가 피살되고 간부들이 납북되는 등 총 8명의 희생자 발생.
1968
4월 27일
서울신문사는 선열들의 애국충절을 오늘에 되새기며 내일의 조국을 조망하기 위해 1966년부터
1972년까지 15기에 달하는 ‘애국선열 조상 건립사업’을
펼쳐 그 첫 번째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종로 네거리에 세워지게 되었고 이어 14기의 동상이 72년까지 순차적으로 세워졌으며 이후 동상 관리권을 서울특별시 또는 유관단체로 이관함.
1985
6월 22일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최고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서울’ 창간, 70만부의 창간호가 30분 만에 매진되는 등의 기록을 남겼으며 신문 100년사에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
‘주관적인 스트레이트 기사’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기사 형식을 창조
국내 최초로 전면 가로쓰기 단행
한글 전용 신문
국정교과서의 표기법을 채택해 세로쓰기 신문의 폐단 일소
매일 4도 컬러인쇄 발행, 흑백 위주의 신문에 혁신적인 변화
취재기자 및 편집기자의 이름을 지면에 명기, 기사의 책임감 강조
2004
7월 18일
대한민국 언론사 중 최초의 창간 100주년을 맞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위기의 DMZ 생태계 대탐사,
희귀병 어린이 돕기 캠페인, 하이서울 한강마라톤대회 및 서울신문하프마라톤, 서울현대도예공모전 등 8건의 큰 행사와 서울신문 100년사 편찬, 본사 1층 로비에 배설·양기탁 선생 흉상 건립 등이 추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