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입… 대기업 36%와 대조
서울 종로의 한 옥외광고물 제작업체에 다니다 퇴사한 김모(34·경기 시흥)씨는 지난해 여름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를 비롯한 직원 5명이 사장에게 퇴직연금 가입을 건의했지만 사장은 ‘그럴 형편이 안 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후 회사는 폐업 직전에 몰렸고 결국 김씨 등은 지난해 10월 퇴직금 4700만원을 못 받은 채 회사를 떠났다. 당국에 임금 체불을 신고했지만 사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 말고는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지금 김씨의 아내는 갓 돌이 지난 딸을 떼어놓고 시급 4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한다.사업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특성상 퇴직연금 가입 필요성이 대기업보다 오히려 높은 데도 대다수 업주들이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가입을 기피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2월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중소기업(300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의 5.03%에 불과하다. 전체 143만 625개 중소업체 중 7만 1933개만 가입해 있다.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장)의 가입률이 35.7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7분의1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최종 부도처리된 중소기업은 2007년 1504개, 2008년 1884개, 2009년에는 1259개에 이른다. 같은 기간 대기업은 2~3개가량만 부도를 맞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의 체불임금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체불임금은 2007년 2896억원, 2008년 3563억원, 2009년 4696억원으로 매년 1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의 유동성 문제 때문이다. 직원들의 퇴직금을 회사가 직접 관리하면 이런저런 자금 위기에 임시변통할 수 있지만 금융기관에 맡기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자는 “중소기업 사장들은 퇴직연금 자체에 관심이 없고, 직원들도 박봉에 시달리다 보니 퇴직금 중간정산 받기에 바빠 중소기업들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퇴직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제한하고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법안 정비가 시급하다. 그러나 2008년 노동부가 이런 내용으로 내놓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중소기업 근로자 배려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금융기관 퇴직연금 관계자는 “퇴직연금 확대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근로자 배려 등이 필요한데 노동부는 이보다는 은행·보험·증권 간 경쟁구도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2010-04-2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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