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부터 타임오프제 시행
노조가 있는 국내 기업 네 곳 가운데 한 곳은 노조가 법정 한도를 초과한 유급(有給) 전임자 수 보장을 요구하면 수용할 뜻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는 1일부터 유급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가 시행됨에 따라 노사 간 편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힌 노동부의 의지와 배치된다. 제도를 둘러싼 산업현장의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신문과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 23~28일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 30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노조가 유급 전임자 수 유지를 위해 편법 요구를 하면 수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사내 노조가 있다고 밝힌 기업(71곳) 중 24.0%가 ‘매우 그렇다.’(10곳) 또는 ‘그렇다.’(7곳)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매우 아니다.’(3곳) 또는 ‘아니다.’(15곳)라고 답한 기업은 25.3%였고 ‘보통이다.’라고 대답한 기업이 50.7%(36곳)로 가장 많았다. 협력적 노사관계 유지와 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업이 여럿 있다는 의미다. 노동부는 사측이 법정 타임오프 한도를 넘어선 유급 전임자를 보장해주면 불법행위로 보고 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업규모별로는 대기업일수록 노조의 현행 유급 전임자 수 보장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곳이 많았다. 300인 이상 사업장 인사·노무 담당자 중 35.5%가 같은 질문에 ‘매우 그렇다.’(10곳) 또는 ‘그렇다.’(6곳)라고 응답했고 ‘매우 아니다.’(1곳) 혹은 ‘아니다.’(4곳)라고 답한 기업은 11.1%에 그쳤다.
반면 소규모 기업 대부분은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거나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인사·노무 담당자 중 ‘그렇다.’라고 답한 기업은 3.8%(1곳)에 불과했으나 ‘매우 아니다’(2곳), ‘아니다.’(11곳)라고 답한 기업은 50.0%에 달했다. 또 ‘보통이다.’라고 응답한 기업은 46.2%(12곳)였다.
●처벌 둘러싼 법리 논쟁 계속될 듯
적지 않은 기업이 ‘현행 유급 전임자 인원을 유지해달라.’는 노조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한 것은 현장의 복잡한 사정을 반영한 결과다. 타임오프 한도의 엄격한 적용으로 노·사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배인연 동화 노무법인 대표는 “유급 전임자 수를 줄였다가 노·사 마찰이 생기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부담스러워하는 사용주가 많다.”고 말했다. 전임자 급여 지급이 사측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제도를 엄격히 적용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또 타임오프제의 허점을 이용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경영계 내에서 노조와 ‘각 세우기’를 피하려 하는 기류가 감지되면서 노동계의 ‘타임오프 무력화’ 움직임이 힘을 받게 됐다. 금속노조는 현재 단체협약 진행 사업장 170곳 중 기존 전임자 처우를 보장하기로 노사가 의견을 모은 업체가 85곳이라고 주장해왔다.
노동부는 이에 따라 자체 진상파악에 나서는 한편 이달 중순 이후부터 타임오프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면합의 특성상 적발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면합의의 특성상 내부고발 없이는 찾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사 간 편법 합의를 적발한다고 해도 처벌을 둘러싼 법리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노동부는 ‘사용주가 타임오프 한도를 넘는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면 부당노동행위로 본다.’는 노조법 81조를 근거로 이면합의 때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그러나 노동계의 해석은 다르다. 부당노동행위로 사용자를 처벌하려면 사측이 노조 자율성 침해 등을 목적으로 ‘뒷돈’을 줬다는 것이 드러나야 하는데, 전임자 급여는 오히려 노조가 요구하고 있어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계의 주장은 법문해석을 잘못해서 나온 것”이라면서 “타임오프 한도 위반에 따른 처벌은 사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0-07-01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