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유입 홍수 외국자금 명암
#1 2008년 9월 말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단기외채는 939억 3000만달러(잔액 기준)였다. 하지만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에 휩쓸리자 외은 지점들은 일제히 돈을 뺐다. 2008년 12월말 단기외채는 총 678억달러로 석달 만에 261억 30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그 기간 한국은 또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금융시장의 대혼란을 겪었다.#2 올 9월 말 현재 외국인의 상장주식 보유금액은 335조 8000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29.7%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2007년 12월27일 이후 1900 고지에 안착했다. 외국인의 채권 보유금액도 74조 6229억원으로 전체 상장 채권잔액의 6.7%를 기록했다. 외국인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19개월째 순매수세를 이어갔다.
최근 들어 외국자본이 국내로 물밀듯이 들어와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의 주식과 채권, 원화가치 상승 등은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털에 기초한 것보다 오히려 천문학적인 해외자본 유입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인들의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거품이 꺼지면 ‘제3의 금융위기’를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의 상당수는 단기 성향인 조세회피지역의 투자자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7일 금융감독원의 9월 국가별 주식 순매수 동향에 따르면 영국이 지난 5~8월 지속적으로 순매도를 하다가 9월 2776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네덜란드는 8월 순매도(2403억원) 이후 지난달 순매수세(5025억원)로 전환했다. 싱가포르와 아일랜드도 각각 3723억원, 3377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입했다. 케이만아일랜드는 올들어 3199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들 국가의 자금은 단기성 투자가 많은 데다 일부 국가는 조세회피 지역으로 분류된다. 최현필 금융감독원 선임조사역은 “영국은 보유주식을 많이 팔았지만 주식 보유비중이 거의 줄지 않아 공매도를 통해 주식을 채워넣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단기자금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의 풍부한 유동성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기부양으로 풀린 만큼 과거에 금융시장을 교란시켰던 핫머니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돈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기투자성 자금이라기보다 더 나은 투자처를 찾아 떠도는 돈이라는 진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펀더멘털이 견고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인도 주가는 7월 말보다 지난 5일 현재 14.9% 뛰었다. 인도네시아는 같은 기간 상승률이 17%, 태국도 13.9%를 보이고 있다.
김동완 국제금융센터 상황정보실장은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주가상승률과 자국 화폐의 절상 속도가 중남미와 동구권 등 다른 대륙을 압도하고 있다.”면서 “이는 경제 여건이 가장 나은 투자처에 돈이 쏠리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과거와 같은 금융 위기는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유동성 랠리’는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들이 금리 인상과 유동성 양적완화 금지 등의 출구전략을 펴지 않는 한 신흥시장을 떠도는 돈들이 회수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통화량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2010-10-08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