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감시 기능 강화” vs “관치 통로 악용될라”
하나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요청과 최태원 SK 회장의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선임 등을 계기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당한 주주권 행사라는 주장과 관치(官治)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전자는 건전한 경영 감시를, 후자는 경영 간섭을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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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신한금융에 사외이사를 파견하고 있었다면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서 “정당한 주주권 행사 차원에서도 사외이사 파견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사로는 처음 하나금융이 사외이사 파견을 요청해 온 만큼 추천 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해 시장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사외이사를 경영진이 뽑거나 우호적인 사람들로 채우다 보니 ‘거수기’에 그친 측면이 없지 않았다.”면서 “국민연금에서 사외이사를 파견한다면 경영감시 기능이 강화될 수 있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도 “일본 주주들은 다 주주권 행사를 하고 있고, (경영진도) 주주들 눈치를 보는데, 대한민국 국민이 기탁한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시작됐을 때 찬반 논쟁이 있었지만 선진 자본주의로 가려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아직 보장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이 청와대나 보건복지부 등 정부의 외압에 밀려 낙하산 인사를 (사외이사로) 앉힌다면 주주권 행사의 의미가 흐려진다.”면서 “국민연금 공사 설립, 운용위원회 분리 등을 통해 독립성을 먼저 확보한 뒤 주주권 강화를 추구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국민연금이 파견한 사외이사는 무보수로 하는 등 견제 장치를 만들면 ‘낙하산’ 소지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미래 소득을 담보로 한 돈을 투자하기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을 국민 손실 최소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되면 기업의 장기 투자나 공격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고, 거꾸로 일시적인 경영난에도 거액의 투자금이 곧바로 빠져나가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금융과 달리 KB금융과 우리금융이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파견에 대해 “전혀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긋는 이유다. 전 이사장은 “하나금융에 국민연금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모범적인 선례가 된다면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다른 상장사에도 사외이사 파견이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사외이사 파견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2012-02-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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