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의사들 속출…경쟁심화에 적자 눈덩이

신용불량 의사들 속출…경쟁심화에 적자 눈덩이

입력 2014-01-19 00:00
수정 2014-01-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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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전문직의 대표격인 의사·한의사의 처지가 예전 같지 않다.

날로 늘어나는 병·의원, 고가 장비와 임대료 부담에 개인회생(법원 주도 채무조정) 신청자 5명 중 2명은 의사·한의사다. 간판을 내리는 곳도 수두룩하다.

◇’신용불량자’ 의사까지…망하는 병·의원 속출

전문의 박모(54)씨는 2000년 경기도에서 피부과 의원을 열었다. 한 달 수입은 750만원 정도로, 동료 의사에 비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주변에 다른 피부과가 하나 둘 생기자 상황이 나빠졌다. 환자가 뜸해지고, 매출은 감소했다. 병원을 차리느라 빌린 3억6천만원의 대출금 상환 압박이 시작됐다.

그는 “임대료와 간호사 급여 등 고정비용은 계속 나가는데 대출 이자까지 상환해야 하므로 버거웠다”고 말했다.

결국 박씨는 원리금과 연체이자로 쌓인 4억3천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개업 12년 만에 폐업 신고하고, 자신은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했다.

박씨가 폐업한 2012년, 국내 3만557개 병·의원 중 1천906개가 함께 문을 닫았다. 폐업률은 6.2%다.

최근 5년간 서울고등법원 관할지역 개인회생 신청자 1천145명 중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는 449명으로 전체의 39.2%를 차지했다.

의료업계는 의사들이 겪는 어려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줄어드는 환자 수에 따라 치열해진 경쟁과 낮은 진료수가를 지목했다.

일단 병·의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2012년 기준 신규 개업한 병·의원은 2천263개에 달한다. 이는 3년 전인 2009년 신규 개업한 병원 1천679개보다 584개(34.7%) 늘어난 규모다.

의사면허 시험 합격자는 2011년 3천95명, 2012년 3천208명, 지난해 3천32명 등으로 매년 3천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진료수가(2001년 100을 기준치)는 120이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는 140, 임금은 177로 더 올랐다.

김양균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1989년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나자 정부는 보험료를 낮게 유지하려고 수가를 강력히 통제해왔다”고 말했다.

◇경쟁 심화에 적자 눈덩이

경기 침체도 의사를 비켜가지 않았다.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치료를 받지 않고 참거나 시기를 미루는 경우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전체 가구의 보건의료비 지출액은 월 평균 17만1천483원으로 1년 전보다 2.9% 증가에 그쳤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큰 병원’을 찾는 경향에서 비롯한 양극화 문제도 발생했다.

송형곤 의사협회 대변인은 “경증 환자가 종합병원에 가니 양극화와 쏠림 현상이 심하다”며 “시설 수준이 낮은 1·2차 의료기관은 폐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네 병원’으로 불리는 의원들은 적자를 견디다 못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177개 의원을 분석한 2012년 의료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의원의 평균 적자는 2010년 1천290만원에서 2012년 2천460만원으로 두 배가 됐다.

서울 노원구에서 치과 진료기기 납품 영업을 하는 손모(38)씨는 요즘 외상 수금이 주요 일과다.

그는 “기기 대금을 제때 주지 못하는 치과 개업의가 늘고 있다”며 “내가 맡은 지역의 치과의원 5곳 중 3곳은 생존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의료업계는 국민의 진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려면 동네 병원 등 기초 의료기관이 일정 정도 규모로 유지돼야 하는 만큼 수가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용선 대한의원협회 회장은 “정부 주도의 수가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낮은 수가를 유지하려고 지나친 기준과 규제를 두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혈압, 당뇨 등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 늘고 있다”며 “국민이 충분한 진료와 상담을 받으려면 기본 진료비를 올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상황에 맞는 대책 필요” …탈세·리베이트 등 고질적 문제도

정부는 병·의원의 경영난과 의사들의 폐업·파산 속출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다르다.

일단 모든 병·의원이 어려운 것은 아니므로 상황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의료법인의 수익 다변화를 위해 자법인 설립을 통한 부대사업 허용 등의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의사협회는 “정부도 저수가 때문에 병원 경영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수가 인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편법”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의료업계의 수가 인상 요구와 파업 경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고소득 전문직의 대명사였던 의사 직종에서 탈세와 리베이트 수수 등 ‘검은 돈’ 거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의사는 국세청의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조사 단골 대상이다.

할인·할부 등을 조건으로 특수 치료 비용을 현금으로 받아 차명계좌로 세탁하거나 개인금고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탈세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지난해 상반기 세무조사를 통해 고소득 자영업자 442명을 대상으로 2천806억원을 추징했을 당시 고소득 의사의 탈루 소득도 상당수 확인됐다.

성형외과 원장 B씨는 수술비 할인을 조건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한 뒤 현금 수입을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수입금액을 누락했다. 여기에 전산 차트를 삭제해 과세 자료를 없애고 실제 거래 기록은 이동식 저장장치에 넣어뒀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정부가 병·의원과 제약업계의 불법거래를 근절하겠다고 나섰지만 리베이트 수수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은 삼일제약이 병·의원에 거액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을 적발해 소아과 원장 A(46)씨 등 의사 45명과 병·의원 직원 5명 등 총 50명을 벌금 200만∼6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삼일제약이 수년간 자사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894개 병·의원 의료인 1천132명에게 32억5천616만원에 이르는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을 적발한 것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탈세와 리베이트 수수 문제로 병·의원이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전에 자정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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