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흡연 인과관계·위법성 입증 난관…공단 “진료 데이터로 관계 증명”
”당신들이 만든 담배를 피워 많은 국민이 암에 걸렸고, 이 진료비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됐으니 물어내라”이 같은 취지로 건강보험공단이 소송대리인을 통해 14일 마침내 약 540억원 규모의 ‘담배 소송’을 공식 제기했다. 김종대 공단 이사장은 이 소송을 “정의와 양심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승소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담배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제품인데다 담배와 암 발병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법정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대법원, 개인 소송서 암·흡연 인과관계, 담배사 의도성·위법성 인정 안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오랜기간 담배를 피우다가 폐암에 걸린 환자나 그 가족이 국가나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4건의 담배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당장 지난 10일만해도 흡연자 30명이 지난 15년동안 담배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진행한 비슷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최종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우선 대법원은 일부 원고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암과 흡연 사이의 직접적 상관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흡연자의 생활습관, 직업, 식습관, 가정환경, 유전적 요인 등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꼭 집어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입증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인과관계뿐 아니라 담배가 인간이 즐기는 제품으로서 제조·설계·표시상 결함이 있는지, 제조사가 익히 담배의 유해성을 알고도 일부러 이를 숨긴 채 팔았는지 등 ‘위법성’과 ‘의도성’ 측면에서도 담배사의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 공단 “진료·역학 통계, 외국계 담배회사, 담배 중독성에 초점 맞추면 승산”
이처럼 개인 소송의 ‘연패’에도 불구, 건강보험공단이 공공기관으로서 처음 시도하는 이번 담배 소송은 법원으로부터 다른 판결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공단은 우선 흡연과 암의 인과관계 증명을 위해 공단의 풍부한 흡연자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암과 자신의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어려워도,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역학·통계적으로 객관적 피해 규모를 도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537억원의 소송 규모도 흡연과의 인과성이 큰 3개 암(폐암 중 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후두암 중 편평세포암) 환자들 가운데 20년이상 하루 한 갑씩 흡연했고, 흡연기간이 30년을 넘는 사례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이 2003~2012년 사이 부담한 진료비를 추정한 결과이다.
피해액 추산을 위해 공단과 소송대리인들은 환자의 일반검진자료·국암환자 등록자료(국립암센터)·한국인 암예방연구(KCPS) 코호트(특정인구집단) 자료 등을 연계, 분석했다.
공단과 소송대리인들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도 “1994년 미국 주정부들이 담배사를 상대로 진료비 반환을 청구할 때에도 역학적·통계적 방식으로 손해를 산정한 바 있고, 캐나다의 경우도 별도의 입법을 통해 인과관계 및 손해 입증 자료로 통계·역학 자료를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단측은 국내 KT&G에 비해 상대적으로 담배 제조과정·성분 등 관련, 공개된 정보가 많은 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 등 해외 담배제조사들이 소송 대상에 포함된 점도 유리한 변수로 보고 있다.
개인 담배소송에 이어 공단 담배소송까지 선임한 정미화 법무법인 남산 대표변호사는 “(개인 담배소송의 경우) 피고 KT&G가 자료 공개를 꺼려 증거를 통한 인과관계 입증에 한계를 느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건보공단의 소송 대상에는 이미 해외 담배소송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공개한 필립모리스·BAT가 포함돼있고, 흡연 피해자들에 대한 건보공단의 의학적 자료도 많아 개인사건과는 달리 승소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담배가 기호식품인 만큼 개인의 선택에 따라 피운 것”이라는 담배회사측의 주장에는 담배의 ‘중독성’으로 맞선다는 전략이다. 정 변호사는 “흡연이 개인의 기호·의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중독성 때문에 이뤄지는 일종의 질병이라는 의학계의 의견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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