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환경·안전 정책에 영향력 행사
국내 자동차업체 5개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회장이나 부회장을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마피아)가 20년간 독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30일 협회에 따르면 김용근 회장은 산업자원부 차관보(산업정책본부장) 출신이다. 2008년 퇴임 후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을 역임하고 지난해 10월 협회장으로 취임했다.
협회는 웹사이트에서 김 회장을 행정고시 23회 출신에 상공부 산업진흥과, 산자부 산업정책과장·산업정책관·산업정책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산업정책 전문가로 정부, 유관기관 및 산업계와 폭넓은 소통체계를 갖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전임 권영수 회장도 산업부 국장 출신이다. 권 전 회장은 공직을 떠나 2010년부터 협회에서 상근 부회장을 맡다가 이듬해 회장으로 선임됐다.
권 전 회장은 산업자원부 무역진흥과장, 국무총리국무조정실 산업심의관과 산업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과 지경부 기술표준원 표준기술기반국장을 역임했다.
이전에는 회원사의 대표이사급 인사가 돌아가며 비상근 협회장을 맡고 산업부 출신 인사가 상근 부회장으로 오는 것이 관례였다.
’산피아’는 1995년부터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협회 상근 부회장 자리를 도맡아왔다.
정덕영·김광영·남충우·허문·권영수 전 부회장 등 5명 모두 산업부를 거친 고위 관료 출신이다.
그러다 외국인이 협회장을 지낼 수 없다는 신설 규정 때문에 한국GM 사장의 협회장 취임 길이 막힌 일을 계기로 산업부 출신은 상근 회장으로 격상됐다.
상공부 인가를 받아 1988년 출범한 자동차산업협회는 현대·기아·한국GM·쌍용·르노삼성 5개 회원사가 매출액에 따라 예산을 나눠 부담하고 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회원사 권익옹호를 위한 대정부 건의 활동’ 등을 역할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자동차 연비를 포함한 ‘환경·안전 관련 정책 및 제도 개선’도 있다.
정부 정책을 자동차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로비하는 것이 주 역할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선사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을 해양수산부 고위 관료 출신이 도맡아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정부의 안전 규제와 감독을 무마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자동차 업체는 ‘산피아’를 통해 정부의 환경·안전 규제 정책에 영향을 끼쳐온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환경기준이나 안전기준이 강화되면 업체의 비용 부담이 커지니 최대한 늦추거나 막으려고 막후 로비를 많이 한다”면서 “정부에 로비해야 하니 낙하산이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장들은 ‘산업부 출신이니 후배(현직 관료)들한테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나를 활용하라’고 늘 말한다”면서 “현대·기아차 등이 자체적으로 로비하면 우리도 옆에서 힘을 실어준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발표된 CEO스코어 집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사외이사 가운데 관료 출신이 절반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이 가장 많고 국세청과 산업부 출신도 있다.
대기업이 이같이 전직 관료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은 사정작업이나 각종 규제를 방어하려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자동차 연비 검증 결과 발표에 대한 논란을 놓고 “연비가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부가 2003년부터 승용차 연비 사후검증을 했지만 지난해까지 제작사의 연비 부풀리기 행태를 적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업계 차원의 로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한편 업계 이익단체가 산업부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자동차 외에 전자, 철강, 조선 등 다른 분야도 비슷하다.
오일환 철강협회 부회장은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장,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등을 지내고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을 거쳐 협회로 왔다.
남인석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은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장과 한국중부발전 사장 등을 지냈으며 서영주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은 산자부 무역유통심의관 출신이다.
석유화학협회, 민간발전협회, 엔지니어링협회 등도 산업부 출신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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