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재벌패션 따라하기/함혜리 논설위원

[씨줄날줄]재벌패션 따라하기/함혜리 논설위원

입력 2010-02-24 00:00
수정 201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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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입기가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된 것은 절대왕정이 확립된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부터였다. 왕권 강화와 더불어 귀족층이 궁정으로 모이게 되고 궁정의 흐름을 따르면서 귀족들은 거의 비슷한 의상을 입게 됐다. 유행의 시작이다.

프랑스 궁정의 유행은 즉각 유럽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도 퍼졌다. 당시 뛰어난 패션 감각과 심미안을 지닌 궁정의 여인들이 유행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퐁파두르 부인이다. 그녀는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으며 20년 가까이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프랑스의 문학, 철학, 미술, 건축, 가구, 도자기 등 예술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우아하고 고상한 미적 감각으로 의상, 장신구, 헤어스타일 등에서 많은 유행을 만들어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녀는 패셔니스타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롭게 권력을 얻게 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평민들과 차별화하고 특권을 과시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귀족처럼 차려입음으로써 유행의 주된 소비층이 됐다.

‘유행’이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특정 양식을 가리킨다. 유행은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집단에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다가 소멸되는 특성을 갖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유행이란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 중에서 아주 특별한 것’이라고 했다. 남들과 같아지려는 마음과 조금 다르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타협안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같아지려는 대상은 언제나 자기보다 좀더 나은 신분이거나 나은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다. 반면 자기보다 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는 차별화하고 싶어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명품으로 치장하고 연예인 패션 따라잡기에 열중하는 이유다.

특히 드라마에서 재벌가 2세나 상속녀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재벌들의 패션을 따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 일가가 공개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눈에 띄는 현상이다. 백화점에는 이 전 회장이 입은 양복, 큰딸이 들고 나온 손지갑, 둘째딸이 입은 코트와 핸드백을 찾는 고객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벌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중산층과 차별화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개성을 못 살린 소비행태는 ‘패션 빅팀(희생자)’을 만들 뿐이란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0-02-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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