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가 정신을 상생으로 이끌려면/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시론] 기업가 정신을 상생으로 이끌려면/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입력 2010-10-08 00:00
수정 2010-10-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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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영업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업에 취업한다. 잘사는 나라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보수를 받지만, 못사는 나라에서는 저임금마저 수시로 체불되고 회사도 자주 망한다. 근로자들이 부지런해도 기업들이 저임금도 감당 못하고 자칫 도산할 지경이라면 나라가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보수 좋은 마이크로소프트나 도요타 등 세계적 유명 기업들이 하나같이 선진국에만 속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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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부유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좋은 기업들을 많이 갖추어야 한다. 세계 최빈국이던 우리의 기적 같은 고도성장과정도 그 내용은 결국 좋은 기업 육성과정이었다. 높은 보수와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는 좋은 기업의 특징은 생산제품이 지속적으로 잘 팔려 나간다는 것인데, 잘 팔리는 제품을 골라내는 것은 바로 기업가의 능력이다. 첨단 PC 시대에 수동식 타자기나 대량생산하는 기업은 당연히 망한다. 기업가가 상품을 잘못 선정하면 근로자들이 아무리 많은 땀을 흘리더라도 제품이 안 팔린다. 기업가의 잘못으로 인력과 자원을 자주 엉뚱한 사업에 몰아넣는 기업은 필경 파산한다.

반면에 유능한 기업가는 사업 선택을 잘 할 뿐만 아니라 합당한 평가와 보상으로 근로 기강을 확립하여 노동생산성까지 높여 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고 싶은 상품을 성실하게 생산하는 기업만이 근로자들에게 높은 급여와 안정된 직장을 제공한다. 이렇게 유능한 기업가와 좋은 기업이 많아야 민생이 부유해진다.

개인은 각자 필요한 물자를 얻으려는 이기적 동기로 일한다. 그런데 시장경제는 필요한 물자를 각자 스스로 생산하도록 몰아가는 경제가 아니라, 서로 남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생산해 주도록 이끄는 상생의 경제다. 내 생업이 만든 상품을 다른 사람들이 사주지 않으면 나는 소득을 얻지 못하므로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수도 없다. 개인의 생업은 항상 시장이 사주는 상품을 생산하도록 적응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시장이 무엇을 사줄지 찾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신상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많은 경우에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일거리 선택의 위험을 기업가에게 떠넘긴다. 유능한 기업가란 이 위험에 도전하여 남들이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일거리를 발굴함으로써 시장의 호응을 얻어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소비대중이 원하는 일거리는 항상 변하면서 현재의 일자리를 앞서간다. 새로운 일거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감당할지를 많은 기업들이 채 모르기 때문에 일자리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기업가의 도전은 이 잠재적 일거리를 발굴하여 현실의 일자리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 도전이 속속 성공하여 지금까지 모르던 일거리를 거듭 발굴하면 고용과 생산이 그만큼 늘고 국가경제도 성장한다.

기업가는 끝없는 이윤 창출을 원한다. 경쟁사업자를 몰아내면 시장을 독점하고, 협력기업을 압박하면 내 몫이 늘어난다. 새로운 일거리 발견에 성공한 기업은 경쟁사보다 더 좋은 상품을 더 싼 값에 공급하는데, 이 때 경쟁사업자가 입는 피해는 경쟁 패배에 대한 시장의 응징일 뿐이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협력기업을 압박하면 당장에는 내 몫을 늘릴 수 있으나 장기적 협력기반은 약화된다. 협력기업과는 상생해야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는데도 미래를 못 믿는 조삼모사의 단견에 빠져 눈앞의 작은 이익만 탐하여 협력기업을 압박하는 일이 적지 않다.

기업들의 이윤추구가 항상 ‘새로운 일거리 발굴’ 도전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하게 경쟁사업자와 협력기업을 압박하더라도 기업 이윤은 늘어난다. 또 지나친 규제는 특정 일거리의 발굴을 아예 금지한다. 경쟁질서 확립과 규제 정비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새로운 일거리 발굴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협력기업 간의 상생노력으로 공조체제가 공고해지면 일거리 발굴의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2010-10-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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