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 이래, 달력이란 것이 생기고 나서 고요하게 저문 해가 있었을까? 지긋지긋하다 그러면서, 어서 빨리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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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공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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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공주문화원장
참 인간처럼 간사하고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존재는 없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 새천년이 열린다고, 얼마나 흥분하고 요란스럽게 떠들고 그랬던가?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기만 하면 뭐든지 좋아지고 새로워지고 달라질 것만 같아서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던가? 그러나 세월을 보태면서 더욱 우중충한 것이 우리네 살림살이요, 울퉁불퉁한 것이 우리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다. 세상은 여전히 저만큼 헛돌아가는 듯싶고 우리는 이만큼 버림받은 것 같은 심정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갈등의 문제가 큰 근심거리다. 나와 다른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우리들 자신의 옹고집과 좁은 소견머리가 걱정이다. 가진 사람과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갈등이다. 케케묵은 얘기라지만 호남과 영남으로 대변되는 지역 간 갈등, 남북한의 분단도 실은 이념문제가 보태진 지역 간 갈등의 확대판일 수 있다. 최근, 더욱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종교 간 갈등, 정부 간 갈등, 세대 간 갈등이다. 새해 예산 배분문제로 불거진 불교계와 정부와의 마찰, 그것은 실은 불교와 기독교 간 갈등의 변형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갈등의 주체들이 십분 양보하고 격앙된 심정을 추슬러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부드러운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4대강 개발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생겨진 갈등일 것이다. 이 문제 또한 세력의 주체들끼리 현명한 쪽으로 해결을 보아야 하고 조정을 해나가야 한다. 정말로 높은 자리에 앉은 분네들, 자기들을 뽑아준 국민들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은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세대 간 갈등이다. 학교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맞붙어 몸싸움을 벌이고 머리끄덩이를 맞잡고 서로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든지, 남학생들에 의해 여교사들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심심찮은 기사들은 정말로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게다가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꽝! 하고 터진 연평도사건은 또다시 우리를 전쟁의 두려움에 떨게 했다. 당혹스러운 사건 앞에 갈팡질팡하는 군 수뇌부의 현명하지도 못하고 민첩하지도 못한 대응태세는 더욱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로 너스레를 떠는 정부의 높은 분네들 또한 우리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포화가 튀는 속에서도 철모 끈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의 임무에 충실한 젊은 병사의 늠름한 태도는 우리를 안도케 했다. 연평도사건, 차라리 잘터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참에 느슨해진 정신을 조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목청들이 높다.
또 다시 한해가 스러지는 길모퉁이에서 두 개의 크리스마스트리에 우리는 주목한다. 하나는 서부전선 애기봉에 켜졌던 크리스마스트리요, 또 하나는 서울 조계사 경내를 밝혔던 크리스마스트리다. 부디 애기봉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본래의 뜻 그대로 평화의 마음, 밝은 마음을 북쪽에 전해서 평화통일의 빌미가 되었기를 바라고, 조계사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종교 간 갈등을 넘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애달픈 마음, 섭섭하고 분하고 억울한 마음들을 두루 살피고 위로하는 희망의 불빛이 되었기를 바란다.
우리는 희망 없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절망에 죽고 희망에 살도록 되어 있다. 그러하다. 아직도 우리에겐 희망이란 마음의 재산이 남아 있다. 희망이란 단어가 남아 있다. 어떻게 하든지 이 희망이란 끈을 붙잡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새해엔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고 좋아지겠지. 거짓 희망이라도 희망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살아갈 용기를 보탠다.
2010-12-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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