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 특임논설위원](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10/23/SSI_2010102303334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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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선 특임논설위원
민심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즉각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해 분노했다. 3·26 천안함 폭침에 이어 그저 당하기만 하는 안일한 군과 정부에 불신을 쏟아냈다. 그런 민심을 읽은 정치인이 한나라당의 홍사덕 의원이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확전하지 말고 상황을 잘 관리하라’고 말씀하도록 오도한 청와대와 정부 내 ×자식들을 이참에 청소해야 한다.”고 욕설을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우왕좌왕했던 정치권도 일제히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같은 정서를 의식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담화를 통해 “앞으로 북한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심은 결기 있는 즉각 대응을 주문한 것이지 확전을 주문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붉은색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는 ‘좌빨’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는 한국전쟁의 정신적 상흔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전쟁 3년 동안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민간인 100만명을 포함해 200만명이 넘는다. 이산가족도 2000만명 이상 발생했다. 그 비참한 죽음과 폭력, 굶주림과 이별의 상흔은 아직도 뱀이 똬리를 틀듯 우리의 의식 저변에 살아 있다. 올해가 60주년이지만 우리의 집단 상처와 기억들은 앞으로도 수십년 이상 두려움으로 남을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불과 며칠 만에 한국전쟁 이상의 인명살상과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피해가 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휴전선 근처에 1만여문의 각종 포를 배치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수도권까지 포탄을 보낼 수 있는 장사정포가 400문에 이른다고 한다. 군 당국은 장사정포로 도발해 오면 즉각 상당부분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와 금융시장 붕괴, 국가신용등급 하락, 외국인 이탈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미그기까지 가세한다면 상상하기도 끔직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북한의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현재 서해 5도의 요새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병대를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하고, 해병 규모를 현재의 5000명에서 2배 이상 늘리고, 서해5도사령부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으로부터 교전규칙에 상관없이 도발 원점을 전투기와 함포로 포격할 수 있는 자위권 행사도 동의 받았다고 한다. 자위권 행사는 도발 움직임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고가 나거나 무턱댄 과잉대응이 되지 않도록 상황에 따른 정교한 지침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모든 후속 조치들은 추가 도발 방지와 전쟁 억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전쟁 억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자칫 전면전을 부를 수 있다.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복구에만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북한의 도발에는 결기 있고 정당하게 맞서야 한다. 비굴하게 평화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민 불안이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전쟁이 악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전쟁은 악이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의 영원한 과제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전쟁은 안 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jshwang@seoul.co.kr
2010-12-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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