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하 수㎞ 아래에서도 생물이 살고 있다. 바로 박테리아들이다. 미생물의 일종인 박테리아는 흔히 ‘세균’이라고 불리지만 일반 병원성 세균과는 다르다. 땅속 박테리아들은 사람들이나 동식물에 기생하여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 내부의 화학적 순환과정에 참여해 에너지를 얻고 대사 활동 등을 한다. 이를 ‘생지화학적’(biogeochemical) 산화·환원 작용이라고 일컫는데 땅속의 유기물이나 수소 가스 등을 분해하여 생성된 전자들을 주변의 금속 원소들에 전달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박테리아가 금속 원소를 대신해 우라늄 등 방사성 핵종들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방사능으로 오염된 토양이나 지하수를 정화하고자 할 때도 박테리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자연환경에 한번 누출된 방사성 핵종은 방사선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며 이동하는데, 박테리아에 의해 미세하지만 단단한 광물질로 모습이 바뀐 방사성물질은 매우 안정된 천연 광물이 될 수 있다. 박테리아를 이용하면 방사성물질이 지하수에 녹아 강이나 바다로 확산될 가능성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박테리아가 살아 있는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방사성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적당한 양일 때 오히려 활발히 증식한다는 사실이다.
본래 방사선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을 비롯해 지표면이나 암석과 같은 물질로부터 방출되고 있지만 그 정도가 미미하다. 하지만 방사선의 세기가 강해질 경우 인체에 끼치는 영향도 유해한데 일부 박테리아는 고농도의 방사성물질이 있을 경우 일부를 흡수하고 나머지는 다른 안정된 형태로 바꾸어 방사능의 유해성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이런 박테리아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 러시아 등의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이 많고 방사성물질이 지하수 등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이를 억제하기 위해 박테리아 등 미생물을 이용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진도 국내 지하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우라늄 제거 과정을 풀어내고 갑상선암을 일으키는 고방사성 요오드를 99% 이상 광물화해 제거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땅속 광석에서 얻고 있다. 따라서 사용한 우라늄과 부산물들을 다시 안전하게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야 할 의무도 있다. 이를 위해 깊은 땅속에서 수천, 수만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박테리아들을 친환경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지혜로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승엽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2016-09-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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