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좋은세상] 청와대인사권, 사고치는 이유

[강지원 좋은세상] 청와대인사권, 사고치는 이유

입력 2010-07-28 00:00
수정 2010-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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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가 국무총리보다 세다는 말이 있다. 과거 어떤 국무총리가 청와대 비서를 가리켜 ‘비서 나부랭이’라고 지칭한 동기가 꽤 알려져 있다. 청와대 사람들은 장관들보다 ‘끗발’이 세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말도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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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대표
강지원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대표
총리나 장관에 대해서 이러하니, 그 이하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실로 무소불위의 권세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렇게 권세를 휘두르다가 가끔 고집 센 사람을 만나면 옛정권의 경우처럼 “배 째달라는 말씀이지요?”하고 칼질까지 해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특히 지금의 당사자들은 요즘엔 과거와 다르다며 펄펄 뛸지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역대 정권의 고질적 악습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온갖 인사권이 집중되어 있어 그 틈새에 비서들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예컨대 중앙부처 실국장 등 고위간부의 인사를 보자. 이는 가히 우리나라의 핵심일꾼들에 대한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서명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들 중 이름 석자를 직접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단 한 사람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형식적’ 결재일 뿐인 것이다. 대신 실질적인 검토는 비서들이 다 한다. 거기에 틈새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철만 되면 청와대가 들썩인다. 힘없는 자들은 장관에게나 매달리지만, 한 수 높은 자들은 청와대 쪽에 줄을 댄다. 실세, 측근들의 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에서 호남인맥, PK인맥, TK인맥 등등의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런 까닭이다. 각종 청탁수수, 비리, 사찰의혹 등의 근원이 된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은 까마득하게 모른다. 이래도 좋은가.

여기서 우리는 왜 각 부처 최종인사권자의 명의를 대통령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때는 5급 이상 공무원은 그래도 대통령이 임명한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주기 위해 대통령 명의로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세일 뿐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의 임명장을 왜 대통령이 주나.

각 부처 소관인사는 전적으로 장관에게 맡기도록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각 부처 소속 인물들은 누구인가. 장관이 쓸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장관이 마음대로 A는 A국장, B는 B국장을 시켜서 마음껏 일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이름도, 성도 모르는 대통령이 C국장, D국장을 발령 내는가. 장관을 못 믿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장관 임명을 잘못한 것 아닌가. 장관이 인사를 잘못했다고? 그러면 장관을 갈아치우면 될 것 아닌가.

문제는 인사권의 위임과 책임 부여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과도하게 임명장에 서명하게 하는 제도부터 과감하게 뜯어 고쳐야 한다. 부처인사권을 장관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대신 그 책임을 가차없이 묻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장관도 책임지고 일을 하고, 대통령도 쓸데없는 ‘형식적’ 결재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 사이에 끼어들었던 비서, 측근, 실세들의 각종 호가호위를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역대 정권의 청와대 사람들은 법규상의 인사권을 빙자한 인사 횡포 외에도 초법적인 인사권도 행사해 왔다. 중앙부처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는 각종 공기업사장, 이사, 감사 자리는 물론 심지어 민간부문에 이르기까지 사실상의 권한을 휘둘러 왔다. 그런데 그 칼날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청와대로 되돌아오곤 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 대통령이 이름 석자를 직접 챙겨야 하는 인사를 제외하고는 인사권을 과감하게 장관들에게 넘겨야 한다. 대통령은 몸이 하나다. 몸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일을 과중하게 떠안고 비서들이 대통령 모르는 사이에 대통령 노릇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고의 원천이다. 실질책임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사고를 막는 지름길이다.
2010-07-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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