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이번엔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시 찾아왔다.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됐던 다큐멘터리 영화 ‘알파고’는 그의 탄생과 짧은 생을 다룬다. 서울의 어느 시사회장에서 접한 이 영화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는 내용일 거라는 내 심증과는 아주 달랐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인공지능으로 출연하는 스카이넷의 공포보다는 인간의 고유한 역할에 대한 반추와 먹먹함을 유발한다.
프랑스 보르도에 사는 중국계 프로 기사 판후이는 영화에서 관찰자이자 기록자의 역할이다. 어느 날 런던의 구글 딥마인드라는 기업으로부터 바둑 프로젝트와 관련한 초청을 받는다. 자신의 머리에 온갖 측정 장치를 달고 바둑을 두게 하는 실험을 연상하며 런던으로 향하지만, 예상과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국을 하게 된 그는 전패의 치욕을 겪게 된다. 유럽에서 오래 살아서 기력이 형편없어졌다는 등의 악성 인터넷 댓글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딥마인드 팀은 판후이의 도움으로 알파고 알고리즘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한다. 예상 외의 국지적 손실이 전체 판세에 연쇄적이고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고심하지만, 시간에 쫓겨서 알고리즘 미세 조정에 그친다. 영화의 대부분은 서울의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신묘한 수로 두 개의 수를 소개한다. 알파고의 제1국 37수와 이세돌의 제4국 78수다. 바둑 전문가들을 충격에 빠트린, 이전의 인간이라면 두지 않았을 전인미답의 수다.
이세돌은 알파고의 37수를 바둑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수라고 극찬한다. 우리가 아는 창의력도 어떤 틀 안에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말도 덧붙인다. 나만의 창의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조차도 교육, 관습, 관례대로의 틀 안에 갇혀 있던 것은 아닐까. 그 틀 밖에 그 모든 것을 넘는 신묘한 수 나만의 37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영화에서 알파고의 37수는 인간의 창의력과 그 한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끄집어내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인간의 관습에서 자유로운 알파고의 파격적 창의성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세돌은 3연패를 기록한다. 여기서 깊은 좌절과 고뇌의 산물로 나오는 카운터펀치가 4국의 78수다. 이전의 이세돌이라면 두지 않았을, 알파고에게 통상보다 훨씬 많은 90여수까지 두어 보며 계산하도록 강요한 ‘신의 한 수’로 회자되는 바로 그 수다.
인공지능은 인간성을 파괴하며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언젠가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르는 인류의 공적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세돌의 78수는 기계를 통해 인간다움(humanness)이 확장되고 성장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고. 교육받은 대로라면 검토해 보지도 않았을 수를 단 세 번의 대국 만에 이제는 편견 없이 가능성의 범주에 두게 됐다는 것, 그 사유의 확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제 기계에 인간이 판판이 깨지는 게임이 된 바둑은 설 자리를 잃을 거라고? 영화 마지막의 엔딩 롤에 이런 자막이 나온다. ‘알파고 이후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대거 늘면서 세계적인 바둑판 부족 현상이 보도되었다.’
2018-01-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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