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언파만파] 상투어/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의 언파만파] 상투어/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기자
입력 2021-12-12 20:28
수정 2021-12-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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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메일을 보낼 때 ‘안녕하세요’를 자주 쓴다. 상대도 이렇게 시작하는 이메일을 보내온다. 으레 하는 인사말이지만, 쓰지 않으면 뭔가 빼먹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매번 넣다 보면 상투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해야 형식과 예의를 갖추는 것이 된다. 어쩔 수 없다. 한데 어떤 이는 바로 이어지는 이메일에서도 ‘안녕하세요’를 빼먹지 않는다. 이럴 때는 좀 어색하고 지나쳐 보인다.

상투어(常套語). 사전적 의미는 ‘늘 써서 버릇이 되다시피 한 말’이다. 뻔하고, 때로는 식상하고, 의미 없고, 믿음 없는 말이기도 하다. 버릇 같은 것이기도 하다 보니 상황에 맞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상투적이야”란 말은 “별로야”란 말과 통한다. 국어사전에 실린 예문들도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진부한 상투어를 쓰다”, “이 시는 상투어를 남발하고 있어서…”(표준국어대사전)처럼 ‘상투어’는 ‘진부’한데, ‘남발’된다.

‘월급’은 걸핏하면 ‘쥐꼬리’와 어울렸다. 그렇다 보니 일상에서도, 뉴스에서도 ‘월급’은 ‘쥐꼬리’여야 하는 것으로 비유됐다. 그러지 않으면 비상식적이고 비일상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월급’ 앞뒤에 ‘쥐꼬리’를 놓아야 편하게 공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야 뉴스가 되고 통한다는 의식도 만들어진 듯하다.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을 ‘쥐꼬리’와 연결하는 일이 돼 버렸다. 정확성의 상실을 가져온다. 코로나19로 인한 ‘쥐꼬리’는 이와 달리 보인다. ‘국가 지출 쥐꼬리’, ‘쥐꼬리 보상’ 같은 말들에서는 진부하다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뉴스의 문장들엔 ‘특히’가 의외로 많다. 전하는 내용 자체가 그런 것일 때도 있지만 습관적일 때도 꽤 있다. ‘특히’는 특정한 내용을 강조한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야 한다”에선 다른 시간에도 줄을 서긴 하지만, 점심시간에 더 줄을 선다는 사실을 알린다. 한데 다음 문장의 ‘특히’는 습관성 같다. “공연장에서 ‘신록축제’를 연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에서 ‘특히’는 맥락 없어 보인다. 의미를 선명하게 하기보다는 흐리기도 한다.

코로나19를 전하는 뉴스에서는 ‘무더기’도 과해 보인다. 무더기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무심코 내놓는다. 10명 이하의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5명 이하를 가리킬 때도 ‘무더기’란다.

일상은 반복된다.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상투어를 쓸 수밖에 없다. 한데 항상 똑같은 건 아니다. 말을 변화시켜야 통한다.
2021-12-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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