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아무 이야기도 들은 것이 없다. 그저 무언가 나를 감싼다는 착각. 큰딸 걱정을 하겠지, 오늘은 작은아들 얘기일까. 희붐한 새벽마다 희미한 환청을 들었던 것도 같다. 얼굴도 몰랐던 말소리들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왜 물색없이 생각이 날까.
어릴 적 새벽이면 고시랑고시랑 이야기 소리가 마루를 건너왔다. 집안 어른 누구든 베개를 꺾어 베고 모로 누워서 말소리를 엮었다. 마루를 넘어오던 잔기침 소리는 눈만 감아도 달려오지만 그 새벽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그 말소리가 언제나 나를 감싼다. 먼 물소리처럼, 긴 빗소리처럼. 밑도 없이 끝도 없이.
베개를 꺾어 베고 이제는 나도 새벽잠을 뒤척이는 날. 문득 알 듯하다. 사는 일은 잘 버티는 일이라고, 가만히 와서 따독따독 등을 두드려 주고 가는 말은 크고 오똑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 허름한 줄 알고 잊어버린 새벽의 잔기침 소리라는 것을.
2024-07-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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