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호르무즈해협/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호르무즈해협/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19-07-21 22:30
수정 2019-07-22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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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와 제재 복원으로 촉발된 호르무즈해협의 위기가 일촉즉발이다. 호르무즈해협은 걸프 해역의 입구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이 원유를 수출하는 항로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 해상 수송량의 30%를 차지하는 이 지역의 정세 불안은 국제 유가 등 세계 경제와 직결된다.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자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미국의 제재에 맞서 이란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세 카드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과의 군사충돌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아직까지는 엄포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19일(현지시간) 호르무즈해협 공해를 통과하던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억류하면서 긴장이 급속도로 고조되는 양상이다. 영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즉각 엄중 항의하고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 유조선이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정해진 해로를 이용하지 않는 등 국제해양법을 위반한 데 따른 정당한 조치라며 거부했다.

이란의 영국 유조선 나포는 지난 4일 스페인 남단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브롤터 법원이 유럽연합(EU)의 대시리아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 1호를 억류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과 EU는 이란과 1년간 핵합의를 유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었다. 이번 유조선 충돌로 이란은 핵합의 협상 국면에서 고립을 자초한 모양새가 됐다.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핵합의는 파국을 면치 못할 공산이 크다.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위험도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 무인정찰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0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군 무인기를 대공 방어미사일로 격추했다. 미국은 우방국들이 참여하는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금요일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자국 주재 외교단 대상 호르무즈해협 안보 브리핑에 한국을 포함해 60여개국이 참여했다. 이번 주 방한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호르무즈 파병을 정식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원유 수입량의 약 80%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니 남의 일이 아니다. 군사 충돌 대신 협상으로 갈등이 해결되길 바란다.

coral@seoul.co.kr

2019-07-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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