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사실 한국의 가계부채가 부동산과 직결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채는 빠른 증가세를 지속해 왔다. 다소의 부침이 있었으나 이 기간에 주택 등 부동산 가격도 크게 올랐다. 부채로 조달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돼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는 것이다. 더 비싸진 주택을 매입하거나 전세로 들어가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니 가계의 부채도 늘어난다. 이러한 순환이 오랜 기간 지속된 결과가 오늘날 전례 없이 높아진 부동산 가격과 사상 최대 규모의 가계부채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초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집값 인상을 더욱 부추겼다. 이제 부동산 문제는 자산 버블의 문제를 넘어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분열의 씨앗으로 여겨진다. 너무나 오른 집값이 월급 모아 내 집을 마련한다는 기대를 무너뜨리고, 노동 의욕을 저하시킨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지역 기준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이 2020년 1분기 13.9배에서 올해 1분기 17.4배로 급등했다.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아야 하는 기간이 14년 정도라 해도 기막힐 노릇인데, 한 해 만에 3.5년 더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정책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정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수십 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집값 안정을 자신하더니 결국 이 지경이다. 공급 대책까지 내놓아도 주택가격 상승세가 계속되자 최근 정부는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책을 들고나왔다. 사상 초유의 규모로 늘어난 가계부채를 관리한다는 것인데 부동산 대책을 겸하고 있음을 대부분 짐작한다.
많은 은행이 대출 한도를 내리기 시작했고, NH농협은행은 아예 11월까지 대출 중단을 선언했다. 이제 막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해야 하는 다수의 실수요자가 발을 동동 구르게 됐다. 왜 정부의 정책 실패에 따른 고통을 내가 뒤집어쓰나? 전세 실수요자가 빌리는 전세대출 자금도 결국 임대인이 전세금을 끼고 갭투자하는 데 쓰이므로 주택가격 상승에 일조한다는 인식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택가격을 잡기 위해서라고 해도 가장 책임이 작고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보다는 어제 금통위의 결정처럼 금리를 올려 거시적으로 유동성 규모를 줄이는 것이 낫다. 물론 기준금리의 변경은 자산시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델타 변이 확산 등으로 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최근의 경험은 코로나 확산 등으로 부진한 실물경제를 부양하는 데 금리 인하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금리를 더 올려 자산가격 및 환율을 안정시키는 한편 정책금융을 늘리고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이 나을 수 있다.
정책금융이 늘어나고 대출규제가 완화되면 그만큼 유동성이 증가하겠지만,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 규모에 비할 바가 안 된다. 가계부채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자비용 증가도 만만치 않은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계부채를 줄이는 것이 정도다.
여기서 서민 등 취약계층에게 가는 정책금융은 낮은 금리로 공급되는 것이 좋다. 기준금리는 올리고 정책금융은 저금리로 하면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책금융은 대부분 전체 규모나 개인당 한도가 정해져 있다. 차입자 입장에서는 되도록 안전하고 건실한 투자처나 용처에 사용할 유인이 있다. 반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특정 기준금리에서 무제한의 규모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기준금리가 낮게 유지되면 안전하거나 불안하거나, 건실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더 많은 용처, 투자처에 자금이 유입된다. 차입자의 자기 규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21-08-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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