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노랫말과 유사하게, 국제해양법을 연구하는 필자는 가끔 ‘해양영토’(Maritime Territory)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해양영토에 대한 학술적 정의는 없다. 법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원래 영토(territory)는 육지를 말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제법상의 핵심 요건이다. 해양영토를 법적으로 해석하자면, 바다와 연관이 많은 육지영토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섬과 암석, 간출지 등이다. 영어로는 ‘insular formation’ 정도로 표기될 수 있다. 이 개념에도 여전히 해양은 포함되지 않는다.
바다가 땅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해양영토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해양과 영토를 동일하게 병기함으로써 바다가 육지만큼 중요하다는 강조의 의미일 것이다. 사실 용어의 제도적 사용이 없다고 그 해석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다. 섬과 암석, 영해,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수역은 모두 대한민국의 일부다. 국민 정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직접 통제하지는 않으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해역도 이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공해와 심해저 등 해양자원 확보가 가능한 곳을 ‘해양경제영토’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모든 국가가 바다를 차지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약 2억 3100만㎢의 공해(바다의 약 64.2%), 자원 없는 대한민국에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바다는 이미 육지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소위 패권을 꿈꾸는 국가는 21세기 들어 더욱 바다에 대한 전략을 새롭게 하고 있다.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 국가, 좁은 바다에 갇힌 국가는 현대 과학기술과 무기체계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바다를 어떻게 통제하고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의 성장뿐 아니라, 절대적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중국해와 대만해협,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등이 전형적인 전략충돌의 예다. 지역해 통제권과 대양 진출, 해상세력 간 충돌에 대비한 지정학적 거점으로 부동항을 선점하려는 조치다. 대한민국 또한 적어도 한반도 주변 해역 해양상황에 대한 통제력과 대양진출 전략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안보와 국제관계에서 살아남을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해양전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양은 여전히 육지의 셈법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바다는 이미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독립변수가 됐다. 오히려 21세기 국제관계에서 기존 질서의 균열은 해양에서 시작될 확률이 높다. 미국의 동북아 동맹은 전형적인 해양동맹이다. 미국과 중국이 극한의 충돌을 지속하는 이유다. 패권경쟁과 국제관계의 모든 전략적 이합(離合)이 바다로 향하고 있는데, 우리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 해양전략은 부재한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만일 우리 앞에 놓인 바다가 육지라면, 다른 나라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그 육지에 의해 대한민국은 ‘새장에 갇힌 나라’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흔히 지금을 정치의 시간이라고 한다. 표가 가는 곳에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정치의 시간은 짧다. 그러나 해양전략 부재의 효과는 누적된 총합으로 영향을 준다.
해양수산부는 해양강국이라는 비전을 위해 ‘거꾸로 세계지도’를 배포하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해양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2022-03-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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