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컨, 미안해” 美 멕시코만 기름유출 두달째… 죽음의 바다로

“펠리컨, 미안해” 美 멕시코만 기름유출 두달째… 죽음의 바다로

입력 2010-06-19 00:00
수정 2010-06-1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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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야생 동물들이 위협 받고 있는 이런 때 가끔은 놀라운 성공담을 축하할 기회를 맞기도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지난해 11월11일, 켄 살라자르 미국 내무부 장관은 루이지애나주의 상징새인 갈색 펠리컨이 위기종 명단에서 빠진 것을 축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갈색 펠리컨은 1960년대 살충제 DDT로 멸종 위기에 놓였으나 수십년간의 노력 끝에 애리조나주 사람들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축배를 든 지 7개월이 지난 지금 갈색 펠리컨은 사라졌다. 대신 시커먼 원유를 뒤덮은 ‘검은 펠리컨’이 또다시 힘겨운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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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0일 발생한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는 이 지역 야생 동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근 루이지애나주의 이스트그랜드테르섬 해안에는 주의 상징 동물인 갈색 펠리컨 한 마리가 원유를 뒤집어쓴 채 나는 꿈을 포기했고 ② 인근 또 다른 섬에서는 소라게 가족이 기름으로 더욱 무거워진 집을 짊어진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 ③ 구조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바라타리아만의 인근 해안에는 죽은 바다거북 한 마리가 기름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다. 바라타리아만 AP 특약
지난 4월20일 발생한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는 이 지역 야생 동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근 루이지애나주의 이스트그랜드테르섬 해안에는 주의 상징 동물인 갈색 펠리컨 한 마리가 원유를 뒤집어쓴 채 나는 꿈을 포기했고 ② 인근 또 다른 섬에서는 소라게 가족이 기름으로 더욱 무거워진 집을 짊어진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 ③ 구조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바라타리아만의 인근 해안에는 죽은 바다거북 한 마리가 기름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다.
바라타리아만 AP 특약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정말 슬픈 건, 우리가 엄마 펠리컨 한 마리를 살렸다는 것이 둥지에 남겨져 있을 새끼 펠리컨과 알은 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미 멕시코만 루이지애나 연안에서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석유시추시설 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20일로 2개월을 맞는다. 이 사고로 BP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은 6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BP 손실부담액 600억弗 넘어

그러나 지난 2개월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생명체가 바다를 떠다니는 기름덩어리에 포박당하거나 내몰리면서 사라졌다. 지금까지 조류 783마리, 거북이 353마리, 포유류 41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다행히 600마리 이상이 구조돼 목숨을 건졌지만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을 마감한 동물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 지역이 넓기 때문에 미처 발견되지 않았거나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은 바닷물과 싸우고 있는 건 갈색 펠리컨뿐이 아니다. 원유 유출 지역은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어류 445종, 조류 134종, 포유동물 45종, 파충류 32종 등 모두 600여종의 생물체가 살고 있다.

지구상에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멸종 위기의 희귀 바다거북 ‘켐프스 라이들리’는 이미 207마리가 죽었다고 해양대기청(NOAA)이 밝혔다. 또 지난해 9월 처음 발견된 해저 동물인 ‘팬케이크 배트피시’도 위험한 상태다. 당시 해저에서 건져올린 10만마리 해양생물 샘플 가운데 단 3마리밖에 없었을 정도로 희귀종인 만큼 이번 원유 유출 사태로 멸종될 수 있다.

바다거북과 함께 이번 사태의 또 다른 피해자는 바로 돌고래. NOAA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22마리의 돌고래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원유 유출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

게, 새우, 굴 등 크고 작은 해양 생물들도 기름 바다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너무 작아 인간의 눈엔 보이지도 않는 플랑크톤은 소리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어류·야생동물보호청의 로저 헬름은 “플랑크톤은 크기가 작아 원유에 매우 취약하다.”면서 “플랑크톤이 사라진다면 생태계의 운명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플랑크톤 사라져 생태계 2차 재앙

가장 몸집이 큰 희생자는 지난 16일 나왔다. 원유 유출현장에서 125㎞ 떨어진 곳에서 향유고래 1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사체가 발견된 바다는 원유로 오염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NOAA 과학자들은 이 고래가 며칠 전 죽은 뒤 발견된 장소까지 떠내려갔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향유고래는 멕시코만 위쪽에 서식하는 유일한 멸종위기 해양 포유류다. 이 지역에 1700마리 정도 서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끼리처럼 집단생활을 하고, 자식이 죽으면 어미 향유고래가 그 사체를 입 안에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접적으로 원유에 유출되지 않은 향유고래도 희생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름바다’를 피해 인근 플로리다주 연안으로 해양 동물들이 몰려가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또 다른 우려도 나온다. 해안으로 점차 많은 기름이 몰려올 것으로 전망될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종이 수심이 낮은 해역으로 몰릴 경우 산소고갈로 죽거나 포식자에게 잡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10-06-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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