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관상 치안 나아졌으나 표현·언론의 자유 위축…경제도 악화5주년 되는 25일 앞두고 타흐리르광장 등에 긴장 고조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여파로 촉발된 이집트 시민혁명이 일어난 지 오는 25일로 만 5년이 된다.‘현대판 파라오’로 불린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25일 처음 발발한 사상 초유의 민주화 시위가 기폭제가 돼 그 다음달 11일 권좌에서 쫓겨났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무바라크는 비상계엄법에 의지해 30년간 철권을 휘둘렀지만, 거대한 민주화 저항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장기 독재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낳았다.
무바라크 정권 몰락 후 5년간 이집트는 권력 다툼과 정국 혼란 속에 경제까지 악화했다.
2013년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축출된 이후 각종 유혈사태와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 초 새 의회가 3년6개월 만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 지지 인사들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탓에 의회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군부 실세인 엘시시가 2014년 대통령에 오른 뒤에는 치안과 안보에 역점을 두면서 그 대신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 ‘아랍의 봄’ 이후 4년간 민주화 시도 끝에 다시 군부체제로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은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 정권을 축출한 이후 4년 넘게 혼란기를 보내다가 끝내 군사 정권으로 회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2년만 해도 이집트는 ‘아랍의 봄’ 발원지 튀니지와 함께 아랍권에서 자유 민주 선거로 비교적 순탄한 정권 교체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그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가 집권 1년 만에 군부에 축출되면서 상황이 또다시 급변했다.
군부가 2013년 여름 카이로 등지에서 무르시 지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다가 1천500명 가량이 목숨을 잃으면서 국제사회의 비판도 잇따랐다.
세속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등에 업고 2014년 대선에서 승리한 엘시시는 군부 권한을 확대한 개정 헌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친정부 성향의 정치인들이 대거 의회에 입성해 엘시시 정권의 독주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무바라크 정권의 잔재 청산도 어려워졌다.
2011년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기소된 무바라크도 장기간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바라크는 다른 혐의로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지만,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그의 재판에 대한 관심은 이미 멀어진 상태다.
◇ 공권력 등 치안은 대폭 강화…표현·언론의 자유는 후퇴
이집트에서는 엘시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정권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접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집트 당국이 국내 최대 이슬람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반정부 성향의 유명 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거 잡아들이면서 야권 내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엘시시 정권이 정국 안정을 명분 삼아 반정부 시위와 집회를 철저히 차단하고 탄압하자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되레 크게 위축됐다.
이집트 일각에서는 무바라크 정권 때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 탄압이 더욱 심하다는 말들도 나온다.
실제 이집트 당국은 그동안 무슬림형제단 연루자와 무르시 지지자 등 1만5천명 이상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수십명은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을 거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집트 정부는 2014년 말 ‘3일 전 신고 의무화’, ‘10명 이상 모일 경우 경찰의 사전 허가 후 집회’ 등의 내용이 포함된 새 집시법을 공포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인권단체는 이집트 당국이 과도하게 집회와 시위, 인권 등 민주적 가치를 탄압하고 이집트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무르시를 지지해 온 이슬람 급진 세력은 시나이반도에 거점을 두고 폭탄, 총격 테러를 일삼았다.
일부 무장대원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이집트지부를 자처하고 시나이반도에서 수시로 군인과 경찰을 겨냥해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 조직은 지난 21일 카이로 외곽 기자주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관 등 10명이 숨진 사건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시민혁명 5주년을 맞는 25일에도 수도 카이로 등 곳곳에서 산발적 반정부 시위가 예고돼 당국이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민주화 성지’로 불리는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서도 최근 검문검색이 늘었다.
예년의 사례를 봤을 때 유혈사태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이집트 시민혁명 4주년 때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최소 17명이, 3주년 당시엔 49명이 각각 사망한 바 있다.
이집트 주재 각국 대사관과 공관은 자국민들에게 25일 전후로 대중 모임 장소인 주요 광장이나 정부 기관·시설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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