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황금시간 TV연설로 野와 극한대치…최장기 셧다운 눈앞

트럼프, 황금시간 TV연설로 野와 극한대치…최장기 셧다운 눈앞

강경민 기자
입력 2019-01-09 16:21
수정 2019-01-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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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 수치·잔혹 사례로 장벽 당위성 강조…새 제안·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없어 “마음의 위기, 영혼의 위기” 표현하며 보수층 정서 자극외신 “국민단합용이던 백악관 TV연설을 당파적 목적으로 활용” 지적“연설에 현실 오도 주장 다수 포함” 비판도…민주도 첫 ‘반격 TV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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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황금시간대 대국민 TV 연설까지 동원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과 이를 위한 예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대적인 여론전을 벌였다.

그러나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에 맞서 장벽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면서 연방정부 일시적 업무정지(셧다운)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서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든 갈등상태가 지속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날 18일째로 접어든 셧다운 사태는 이번 주말 역대 최장 기록(21일) 경신이라는 ‘불명예’를 목전에 두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방송사 황금시간대(프라임 타임)인 오후 9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를 통해 9분간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멕시코 국경에서 인도적 차원은 물론 안보적 위기가 증가하고 있다”며 57억 달러 규모의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편성해 줄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그는 특히 국경 상황을 “마음의 위기, 영혼의 위기”라고 표현하는 등 보수 지지층의 정서를 자극하는 언사를 동원했고, 장벽 부재에 따른 위험을 구체적 수치와 사례를 들어 상세히 묘사하면서 건설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지난 2년간 이민세관단속국(ICE)에서 26만6천건의 체포가 있었고 이 중 10만 건이 폭행, 3만건이 성범죄, 4천건이 살인으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서 수년 간 수천명의 미국인이 밀입국자들 탓에 잔혹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주와 조지아주에서 미국인이 망치에 맞아죽고 참수 당하고 시신 훼손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도 폈다. 메릴랜드주에서 16세 소녀가 흉기에 찔리고 폭행당했다는 내용도 연설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올해 마약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베트남전으로 숨진 미국인 전체보다 많을 것이라면서 밀입국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경을 확보하는 문제는 “옳은 것과 그른 것, 정의와 불의 사이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의 책임을 장벽 건설에 반대하는 민주당에 돌리며 “정치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며 민주당 측이 백악관으로 와서 자신과 협상할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셧다운 사태를 해결할 제안이나 국가비상사태 선포 등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면서 현실을 오도하는 주장이 다수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의 인도적·안보적 위기를 강조했으나 국경에서의 체포자는 2000년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이고 마약 밀매 역시 합법적 국경선에서 이뤄져 장벽 건설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NYT와 WP는 과거 대통령들이 백악관에서의 황금시간대 대국민 TV연설을 전쟁과 같은 안보적 위기 상황에 국민단합의 목적으로 활용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당파적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이어 같은 분량으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 책임론을 부각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의 TV연설에 이어 야당 지도부가 ‘반격 TV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을 인질로 잡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위기를 조장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는 다시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도 정부 운영 재개를 촉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러한 무의미한 셧다운을 통해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들은 많은 것들은 잘못된 정보와 심지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며 “대통령은 공포(fear)를 선택했다”고 반격하기도 했다.

황금시간대에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연달아 TV를 장악하고 대국민 설득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는 촌평도 나왔다. NYT는 “(잇단 국가적 연설이) 정치적 가부키춤과 같았고 (TV연설이 끝난) 저녁 말미에는 워싱턴에서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주례 오찬에 참석한 뒤 백악관에서 셧다운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재개하고 10일에는 남부 지역 멕시코 국경을 직접 방문해 여론전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대국민 TV연설이나 국경 방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닥 원치 않았으나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NYT는 전했다.

NYT는 이날 연설 전에 있었던 TV진행자들과의 비공개 오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방문으로) 쥐뿔이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참모들이) 해볼만한 일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를 인용해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여야 의회 지도부와 셧다운 해소를 위한 회동을 가졌으나 접점 마련에 실패한 뒤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국가 비상사태’ 카드를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는 ‘장벽 건설 권한을 얻을 수 있도록 비상 지휘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검토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내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우리는 전적으로 국가 보안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일 회동 후 펠로시 하원의장과 슈머 원내대표도 “정부 문을 다시 열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소했지만, 그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하는 등 대치 전선이 이어졌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한 치의 양보 없는 ‘강 대 강’ 대치를 계속하면서 이날까지 역대 2번째로 긴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기록된 이번 사태는 최장 기록을 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역대 최장 기록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21일(1995년 12월 16일∼1996년 1월 5일)이다. 이번 셧다운은 1976년 이후 역대 20번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기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서로 상대 진영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극적인 사태 해결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국경장벽 예산 확보와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제도(DACA) 존속을 맞교환하는 방안, 여타 예산을 우선 처리한 뒤 국경장벽 예산 문제를 계속 논의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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