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미스 USA’ 우승자의 죽음
마지막까지 주변의 평화 빌었다
징후 인정 못한 고기능성우울증
뉴욕포스트는 ‘2019 미스 USA’ 우승자인 크리스트가 30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7시 15분쯤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60층짜리 초고층 건물에서 투신했다고 보도했다./사진=미스유니버스조직위원회
크리스트는 1991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폴란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포레스트대학교에서 MBA(경영학석사)와 JD(법학전문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변호사 자격 취득 후에는 재소자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펼쳤다.
크리스트는 “몇 달 간 준비한 모의재판에서 나와 친구에게 돌아온 건 ‘다음에는 치마를 입으라’는 반응뿐이었다”며 여성의 복장 자유화에도 앞장섰다. 크리스트는 2019년 5월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서 열린 ‘2019 미스 USA’ 선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52년 첫 대회 이후 38년만인 1990년에야 첫 흑인 우승자를 배출했을 만큼 유색인종에 대한 배척이 심했던 대회에서 크리스트는 당당히 왕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완벽했던 미소 속엔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깊은 우울이 자리잡고 있었다.
크리스트가 미스 USA 우승을 차지한 2019년은 특히 미스 틴 USA, 미스 유니버스, 미스 아메리카, 미스 유니버스까지 미국 주요 미인대회 왕관이 사상 처음으로 모두 흑인 여성이 돌아간 역사적 해였다. 그 때문에 크리스트를 포함한 전 대회 우승자에게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됐다.
크리스트는 “몇 달 간 준비한 모의재판에서 나와 친구에게 돌아온 건 ‘다음에는 치마를 입으라’는 반응뿐이었다”며 일터의 유리천장을 꼬집기도 했다.
크리스트는 주변은 물론 자신조차 속일 만큼 ‘고기능성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을 앓고 있었다. 딸과 돈독했던 모친 에이프릴 심프킨스(54)는 3일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딸은 죽기 직전까지 가장 가까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숨겼다. 이렇게 깊은 고통을 본 적이 없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고기능성 우울증이란 겉으로는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일컫는다. 사회적인 활동과 인간관계 모두 원만해 우울증의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심각한 고립감과 고통을 겪고, 완벽주의자인 당사자가 우울증 자체를 용인하지 않아 더 위험할 수 있다.
모친은 30세로 생을 마감한 딸을 떠올리며 “지구에서의 삶은 짧았지만,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딸의 웃음, 지혜로운 말, 유머 감각, 포옹, 모든 것이 그립다”라며 “딸 그 이상이었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크리스트와 대화한 것이 하루 중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함께할 거라는 걸 안다. 사랑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딸 그 이상이었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크리스트와 대화한 것이 하루 중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함께할 거라는 걸 안다. 사랑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