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생생 리포트] 0.99달러 가격표, 부정 방지의 흔적

[특파원 생생 리포트] 0.99달러 가격표, 부정 방지의 흔적

한준규 기자
입력 2018-05-11 17:26
수정 2018-05-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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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보이는 판촉 효과 크지 않아
19세기 가게 직원 현금 횡령 막고자
잔돈 기다릴 때 제품 등록 방법 도입
미국의 백화점이나 일반 상점,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물건 가격이 0.99달러로 끝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99원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냥 10달러, 50달러로 끝나면 ‘잔돈도 안 생기고 계산하기도 편리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이렇게 가격을 정하는 것이 ‘싸게’ 보이려는 마케팅 기법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마케팅 전문가인 로버트 신들러와 토머스 키바리안은 ‘9-끝 가격의 지각 평가’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위해 실제 실험에 나섰다.

이들은 7~120달러 여성복 169벌을 파는 카탈로그를 두 종류 만들었다. 제품은 같지만, 가격을 달리한 것이다. 첫 번째 카탈로그에는 모든 가격의 끝자리를 ‘.00’으로 표시했다(7.00달러, 18.00달러, 50.00달러, 100달러 등). 두 번째 카탈로그에 있는 제품 가격 끝자리는 ‘.99’이다(6.99달러, 17.99달러, 49.99달러, 99.99달러 등). 실제 가격 차이는 0.01달러(약 11원) 정도다.

이렇게 만든 카탈로그를 여성이 사는 가정 60만곳에 6개월 동안 보냈다. 실험 결과는 예상 밖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99’ 가격 제품의 구매율이 3.23%로 ‘.00’(3.07%)보다 0.15% 포인트 높았다. 아주 근소한 차이다.

결국 거스름돈을 주고받고, 주머니에 잔돈을 생기게 하는 불편함을 주는 ‘.99’ 가격정책은 마케팅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미국 사회에서 ‘.99’란 가격은 왜 만들어졌을까. 19세기 말 소매점 직원들이 돈을 ‘훔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도 있다. 신용카드 없이 현금만 쓰던 시절 소매점의 계산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현금을 빼돌리는 일이 빈번했다. 감시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금전등록기’(지금의 계산기)다. 금전등록기는 가격을 입력해야 돈 통이 열렸다. 이론상으로 등록기에 입력된 판매 제품과 재고 제품 등이 총 제품의 수와 맞아야 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당시 거액의 금전등록기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물건의 재고와 매출 등은 차이가 컸다. 계산대 직원들의 부정이 줄지 않은 것이다. 이는 영수증이 나오는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것을 싫어했던 고객들이 제품 가격을 현금으로 내고 바로 나가 버렸고, 직원들은 제품을 등록기에 입력하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그래서 상점의 주인들은 ‘1센트’라는 잔돈을 거슬러 주는 방법을 도입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고객들은 비록 1센트지만 잔돈을 받기 위해 기다렸고, 직원들은 등록기에 꼬박꼬박 판매 제품을 입력해야 했다. 이것이 ‘.99’ 가격의 탄생 비화다. 여기에 ‘.99’ 정책이 고객들에게 가격이 ‘싸다’는 인상을 주는 효과가 있다는 설이 더해지면서 미국 사회에서 ‘.99’ 가격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21년부터 상점에서 파는 모든 제품에 세금을 매기는 판매세(1.78~9.46·주별로 차이가 있음)가 주별로 도입되면서 사실상 ‘.99’ 가격 정책의 의미는 퇴색했다.

미국의 한 마케팅 전문가는 “‘.99’ 가격 정책이 판매세(세일택스)와 컴퓨터를 이용한 금전등록기 발달로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전통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99’ 가격 정책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2018-05-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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