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공청단 대표 인물..공청단 출신 리커창·왕양 탈락
장, 상하이방 태두..유일한 상하이방 한정 역시 탈락
일각서 ‘시진핑 1인 지배 강화’에 불만 표시 해석도
후진타오 중국 전 국가주석이 22일 열린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퇴장 도중 그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둘은 모두 시 주석의 경쟁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다. 베이징 AP 연합뉴스
후 전 주석은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20차 당대회 폐막식 도중 갑자기 퇴장했다. 중국 내외신 취재진이 인민대회당에 입장하자 시 주석 등과 잠시 대화를 나는 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시 주석에게 다시 무언가를 말하고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고 떠났다. 그가 왜 퇴장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후 전 주석은 중국 정치계 3대 파벌(태자당·공청단·상하이방) 가운데 하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리 총리와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후춘화 국무원 부총리가 뒤를 받치고 있다. 그런데 이날 발표된 20기 중앙위원회 위원(200여명) 명단에 리 총리와 왕 주석은 탈락했고 후 부총리만 살아 남았다. 이번 당대회에서 공청단이 몰락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8월 17일 장쩌민(오른쪽) 전 중국 국가주석의 생일에 부인과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이들 뒤로 시진핑 주석 부부와 리커창 국무원 총리 부부가 보낸 축하 화환이 놓여있다. 홍콩 명보 캡처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최근 중국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쩌민은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가 실각하면서 갑자기 최고권력자가 됐다. 초기에는 ‘준비 없는 집권’에 불안해했지만 덩샤오핑 등 당 원로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임기를 마쳤다. 문제는 그의 권력욕이 지나치게 강해 10년 주석 임기를 마치고도 권좌에서 순순히 내려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후진타오에게 2002~2003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물려줬지만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2004년에야 내려놨다. 이후에도 중국 정치의 핵심인 중난하이와 중앙군사위원회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후진타오를 감시하듯 지켜봤다.
후진타오는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장쩌민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그래서 2012년 당대회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후임자인 시진핑에게 당·정·군 모든 직위를 한꺼번에 이양했다. 상하이방을 무너뜨리고자 시진핑과 후진타오 간 ‘묵시적 연합’이 시작됐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상하이방으로 분류되는 장 전 주석 주변 인물들을 대거 숙청했다.
2019년 11월 11일 솽스이(광군제) 쇼핑축제에서 기록적인 매출이 나오자 저우장융(앞줄 가운데) 당시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당서기가 알리바바 본사를 찾아가 축하하고 있다. 마윈(오른쪽) 알리바바 창업자가 바로 옆에 서 있다. 상하이방으로 알려진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짐작케 한다. 저우 당서기는 지난해 8월 ‘자본과의 결탁’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낙마했다. 항저우시 웨이보 캡처
이번 당대회 결과를 보면 태자당인 시 주석이 상하이방을 괘멸시킨 동시에 권력 분점을 위해 손을 잡은 공청단과의 제휴도 마무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자 세상을 나눠갖기로 약속했던 한신을 제거한 대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장 전 주석과 후 전 주석이 건강상 이유로 불참하거나 퇴장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역사의 시계를 거슬러 권력을 집중하고 상대 파벌을 대부분 솎아낸 시 주석의 모습에 불만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함께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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