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37%에 그치자 하루 늘려
이집트의 대통령 선거 일정이 투표 도중에 갑자기 하루 더 연장됐다. 민선 정부를 무너뜨린 군부의 뜻대로 압둘팟타흐 시시(59) 전 국방장관의 압승이 예상되는데도 무리하게 투표 일정을 늘린 것은 저조한 투표율을 끌어올려 부족한 정통성을 채우려는 꼼수로 보인다. 시시로서는 대통령에 오르기도 전에 국민 외면이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이집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둘아지즈 살만 사무총장은 27일(현지시간) “26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대선에서 유권자 5400만여명 가운데 37%가 투표를 마쳤다”며 “투표일을 하루 늘려 대선을 28일 마감한다”고 밝혔다. AP·AFP 등에 따르면 중선위 측은 선거 당일 낮 온도가 섭씨 40도에 이르렀고, 국외 근로자들이 투표 기간이 짧아 투표에 참가할 수 없었다는 불만을 제기해 이같이 결정했다.
그러나 투표율이 낮으면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투표일 연장이란 편법을 동원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투표율 37%는 시시가 지난해 7월 끌어내린 무함마드 무르시(62)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의 투표율 52%에 훨씬 못 미친다.
헌법재판소장이 위원장을 맡는 중선위는 선거 일정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각급 법원 판사들로 구성되는 중선위는 군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2012년 6월 대선에서 무르시를 지지했던 무슬림형제단과 야권단체가 선거 거부운동을 벌인 결과다. 사실상 시시가 통치한 최근 10달 동안 이슬람 신도 수백명이 피살됐고, 수천명이 투옥됐다.
건축가 로아이 옴란은 “인권과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그에게 왜 투표를 해서 정당성을 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시시는 대통령 후보로서 피폐한 이집트 경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했고, 거리 유세 없이 단지 TV에 몇 차례 등장해 국민에게 제대로 다가서지 못했다. 시시는 대선 과정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수십년 후에나 달성될 수 있으며, 경제를 망치는 시위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에 따라 시시는 이집트를 29년간 통치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86) 전 대통령처럼 경제와 안정을 핑계로 권좌를 쉽게 내려놓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2014-05-29 2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