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피해자 부모 이야기 ‘기묘여행’ 연출 류주연씨

사형수·피해자 부모 이야기 ‘기묘여행’ 연출 류주연씨

입력 2010-04-19 00:00
수정 201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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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만 특이할 뿐 웃기는 연극이에요”

“심각하고 어둡다고요? 아니에요. 소재가 특이해서 그렇지, 웃기는 연극이에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연극 ‘기묘여행’(극단 산수유)을 올리는 류주연(39) 연출의 말이다. ‘기묘여행’은 사형수 부모와 피살자 부모가 함께 사형수를 면회 가는, 말 그대로 기묘한 여행을 다룬 작품이다. 강호순·김길태 사건 덕분에 사형 부활 논의가 나오는 형국인지라,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 소재만 특이할 뿐, 웃기는 연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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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주연 연출가
류주연 연출가
“생활 속의 희극적 요소를 짚어내는 세밀한 대목 때문에 그래요.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관처럼 희극이란 게 결국 누군가의 아픔 때문에 가능하거든요.” 가령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곁눈질로만 보다 보니 가해자 엄마는 피해자 부모의 오른쪽 얼굴만 완벽하게 기억한다던가, 이들 간 첫 만남 장소가 하필이면 노래방이라던가 하는 대목들이다.

그래서 주변 반응도 엇갈린다. 연출가 선배들은 한창 들끓어오른 사형제 논의 때문에 연극적인 측면에서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배우들은 체호프적인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며 “내친 김에 일본투어도 가자.”고 한다.

●“피해자 부모역 남명렬·예수정 출연 감사”

그가 큰소리치는 것은 ‘비빌 언덕’이 있어서다. 용서와 복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야 할 피해자 부모역에 남명렬·예수정 두 배우가 캐스팅됐다.

“예수정 선생님은 제가 연극학교 다닐 때 진짜 선생님이기도 했어요. 부탁드리기 어려웠는데 쉽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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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기묘여행’서 피해자 부모 역을 맡은 남명렬(왼쪽), 예수정씨.
연극 ‘기묘여행’서 피해자 부모 역을 맡은 남명렬(왼쪽), 예수정씨.
지난해 격찬을 받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 덕도 봤다. 남명렬은 이 작품을 보고 류주연의 연출력을 인정했고, 흔쾌히 출연을 약속했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경상도부부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다. 연극의 대중화·상업화를 내건 연극열전이 작품성을 보완하기 위해 우수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1~2편씩을 선택해 무대에 올리는 ‘연극열전 초이스’에 뽑혔다. 오는 8~10월 석 달 동안 공연된다.

류 연출은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를 반대한다고 했다.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도 남명렬의 “죽일 수 없다.”를 꼽았다. “복수하겠다지만, 사형수 앞에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와서는 애꿎은 인형만 찌릅니다. 그런데 인형일 뿐인 데도 배우 입장에서는 굉장히 연기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관객 분들도 그 장면에서 그런 감정을 꼭 느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연극 자체는 열린 결말이다. 사형제 존폐 논란 자체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처럼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하는 “그 펄떡이는 감정”에 공감해 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사형제에 반대”

두 부모 간 만남을 주선하는 코디네이터와 피의자보호센터 자원봉사자의 존재도 눈길을 끈다. 코디네이터는 전직 교도관으로 사형을 집행해 본 경험이 있고, 자원봉사자는 아버지를 살인범에게 잃었던 기억이 있다. 아픔과 강박을 어떤 식으로 치유해야 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인물들이다.

작품은 류 연출이 4~5년 전 일본에 갔다가 발견한 일본의 극작가 고죠우 도시노부의 원작을 연극화한 것이다. 고죠우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을 보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사형제 자체보다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보복감정을 다룬 이야기인 셈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4-1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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