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효자 ‘장기공연’의 공통점
지난 2일 연극열전 시즌2의 작품 ‘웃음의 대학’이 공연 500회를 넘겼다. 말이 500회지 간단한 기록이 아니다. 2008년 11월 첫 소개된 뒤 객석점유율 100%라는 기록을 세웠다. 관객들의 요구로 2009년 다시 무대에 올리자마자 예매 1위를 기록하더니 지난 3월부터는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와 강남 코엑스 아트홀에서 동시 공연에 돌입했다. 장기공연임에도 90% 안팎의 좌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강남북 시장을 두루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이달 중에 대학로 공연은 마무리하지만 강남 공연은 연말까지 이어갈 기세다. 이런 장기공연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왼쪽부터 최근 500회를 돌파한 연극 ‘웃음의 대학’, 무대변환을 최소화한 뮤지컬 ‘쓰릴 미’, 2년 넘게 무대오른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파파프러덕션·뮤지컬해븐·연극열전 제공
파파프러덕션·뮤지컬해븐·연극열전 제공
일단은 재미있어야 한다. 꼭 희극일 필요는 없지만 웃기는 요소가 계속 묻어나야 한다. ‘웃음의 대학’은 웃음을 주는 희극을 증오하는 냉정한 검열관과 웃기기에 목숨을 건 극단 ‘웃음의 대학’ 작가가 벌이는 1주일간의 신경전을 다룬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은 소화 15년, 즉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의 일본이다. 막바지에 작가의 비극적 죽음을 강하게 암시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론 비극이다. 더구나 미네르바 사건, 촛불시위대에 대한 무리한 수사 논란, ‘회피연아’ 동영상을 두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고소했던 일, 국무총리실의 비정상적인 개인 사찰 문제 등이 끊이지 않는 요즘의 우리나라 사정에 비춰볼 때 결코 쉽게 볼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엄격한 검열관이 희극에 차츰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재미나게 접근한 점에 관객들은 무섭고 어렵다기보다 친숙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대학로에서 장기공연했거나 공연 중인 연극 ‘라이어’· ‘늘근도둑이야기’· ‘룸넘버13’· ‘뉴보잉보잉’처럼 코믹한 작품이나 ‘난타’· ‘점프’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공연 형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웃음의 대학’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단 2명. 덩치가 작으니 지구력 있게 달릴 수 있다. 배우가 많으면 팀 전체 호흡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2명씩 3~4개 팀을 구성하면 공연이 길어질수록 후반부에 배우 간 호흡이 더 빛날 수도 있다.
무대변환처럼 추가로 돈 들일 일도 거의 없다. 연극계에서는 2명의 배우만으로 극을 이끌고 갈 경우 조금 규모가 있는 4~5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것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40%의 제작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쓰릴미’,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처럼 2인극이 최근 들어 많아지는 추세도 이 때문이다.
장기공연 작품이 많아지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웃기고 가벼운 레퍼토리 위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어쨌든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고정 레퍼토리가 생기면 다른 작품에 도전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한 연극계 관계자는 “장기공연은 고정 수익을 창출해 주기 때문에 재정 기반을 튼실히 해줘 다른 작품에 도전할 수 있게 해준다.”면서도 “비슷한 레퍼토리가 지나치게 오래 이어지면 (공연이)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주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7-0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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