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벨라 타르 “이미 내 안에 있는 걸 다 쏟아냈다”

<부산영화제> 벨라 타르 “이미 내 안에 있는 걸 다 쏟아냈다”

입력 2014-10-07 00:00
수정 2014-10-07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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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에게 관습적 반복은 가장 위험””관객은 최고의 지성인…내걸 모두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는 소가 걸어가듯 느릿느릿 움직인다. 마을 어귀를 마치 현미경으로 바라보겠다는 듯 천천히 훑는다. 이야기는 지루한 노년의 삶처럼 느리게 흘러가고, 희망은 잿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상영시간만 무려 7시간18분에 이르는 대작 ‘사탄탱고’(1994) 이야기다.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벨라 타르(59)는 악명이 높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롱테이크(길게 찍기), 전문 배우 대신 일반인들을 쓰는 용인술, 그리고 정교한 회화의 한 장면 같은 엄밀한 흑백화면….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그의 작품은 대부분 수작 혹은 걸작으로 통한다.

1979년 ‘패밀리 네스트’로 데뷔한 그는 10여 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필생의 역작 ‘사탄탱고’뿐 아니라 ‘파멸’(1988), ‘평원에서의 여행’(1995),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 ‘토리노의 말’(2011) 등 90년대 이후 영화들이 주로 주목받았다.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토리노의 말’로 국내 관객에게 친숙한 그는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올해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에 위촉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한국을 세 번째 방문했다는 그는 “초대할 때마다 한국을 오는 거 보니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 좋지 않다면 오지 않을 것 아닌가”라면서 웃었다.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예술적으로 정점에 올랐을 때 내려온 거다. 은퇴 후 3년이나 지나고 나서 뒤늦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타르는 “내 할 일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상 하는 건 했던 걸 또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해요. 영화 감독에게 있어 아마도 가장 위험한 일은 자기 관습, 매너리즘에 따라 영화를 만드는 겁니다. 제가 다시 영화를 하는 건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것에 불과해요. 그렇다면, 가게 문을 닫아야죠.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발전시켜온 나의 언어(영화)는 내 생각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저는 내 안에 있는 걸 모두 꺼냈어요. 또 불러들이는 건 지루할 뿐이죠.”

그의 영화는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사색이 깊이 배어 있고, 미국의 패권에 대한 내용도 은유적으로 들어가는 등 정치적인 함의도 풍부하다.

”왜 제 영화가 어렵냐고요? 저는 그런 질문에 진짜 화나요. 관객을 무시하는 태도이기 때문이죠. 대중들은 저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가장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낼 수밖에 없어요. 모든 사람은 감정이 있어요. 지성이라는 건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삶에서 얻는 것입니다.”

그는 영화의 한 장면을 길게 찍는다. 88분의 영화를 28개의 쇼트로 만들어낸 헝가리 출신의 선배 감독 미클로스 얀초의 ‘붉은 시편’(1972)에 못지않은 긴 롱테이크를 자랑한다. 명암 대비가 분명한 흑백화면도 돋보인다.

”한 시퀀스가 액션과 컷으로 구성된 건 미국영화의 전통적인 편집방법입니다. 그렇게 얼굴을 찍은 후 배경을 찍으면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건은 공간 안에서 일어납니다. 예컨대 15초 동안 배우를 찍는다고 해보죠. 카메라를 줌 앤드 아웃 하면서 찍으면 최고의 배우를 프레임 안에 가두는 꼴밖에 되지 않아요. 그건 꽃이 막 피려고 하는데 그 피는 꽃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겁니다. 꽃피는 과정을 온전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롱테이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영화 연출을 그만 둔 후 그는 사라예보에서 ‘필름팩토리’라는 국제영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2명을 포함해 브라질·콜롬비아·일본·미국·아이슬란드·잉글랜드 등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그에게 영화를 배우고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페드로 코스타, 구스 반 산트 등 거장 감독들이 그와 함께 학생들을 지도한다.

”연구소처럼 실제로 영화를 만들고 개발합니다.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규칙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 집중하라고요. 우리 학교의 목표는 가르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데 있습니다. 학생들은 젊고, 야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려 있습니다. 그건 매우 중요합니다. 감독이라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진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어놓아야 합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만, 연출을 할 때보다 학생들과 함께 호흡할 때 더 지치고 힘들다고 한다.

”연출을 할 때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어요. 너무 집중하면 저 위에(하늘에) 있는 느낌이에요. 특히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 전체의 엔진이라고 보면 됩니다. 모든 팀원에게 에너지를 전해주어야 하는데, 제가 피곤하면 곤란하죠.”

그는 세상 일은 모르는데 혹시 다시 카메라를 잡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연출은 이제 충분합니다. 몇 년이 지난다고 해도 그 생각은 확고해요. 영화는 절대로 안만들 거예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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