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플라워즈 염승식이 묻고 전인권이 답했다

게이트플라워즈 염승식이 묻고 전인권이 답했다

입력 2014-10-07 00:00
수정 2014-10-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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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과 염승식
전인권과 염승식 가수 전인권과 밴드 게이트플라워즈의 염승식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6년 가을 캐나다 벤쿠버에서 유학 중이던 15세 학생은 20대 중반의 한국인 형에게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건네받았다. 1985년 발표된 들국화의 1집 ‘행진’이었다.

하숙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서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는 순간, 찌릿한 게 느껴졌다. 오지 오스본, 너바나 등 ‘양음악’에만 심취한 그에게 ‘가요인데 가요스럽지 않은’ 기타와 드럼 비트는 신선함을 넘어 감동이었다.

밴드 게이트플라워즈 기타리스트 염승식(33) 이야기다.

2002년 귀국한 염승식은 2004년 전인권(60)의 솔로 앨범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이 출시되자 냉큼 샀다. 또 친구와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시고는 대학로에서 열린 전인권의 공연도 보러 갔다.

그가 공연 도중 객석에서 용기 내 전인권에게 물었다.

”언제쯤 일어나면 되나요?”

”아직은 아니다. 좀 있다 얘기해주마.”(전인권)

공연 후반 전인권은 객석의 염승식과 눈을 마주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지금 일어나라”고 했다.

이게 전인권과의 첫 대화였다.

그리고 딱 10년이 흘러 두 사람은 최근 종로구 삼청동에서 팬과 가수가 아닌, ‘뮤지션’ 대 ‘뮤지션’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염승식이 전인권밴드로 앨범 ‘2막 1장’을 낸 전인권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난 9월27일(음력 9월4일) 환갑을 맞은 전인권과 무려 27년 나이 차인 염승식은 “형님”, “승식아”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죽이 척척 맞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형님과의 첫 대화는 10년 전이었네요. 2005년에는 형님 자서전도 샀고 자택이 있는 삼청동에도 자주 놀러왔죠. 그래서 지난봄 음악 페스티벌 ‘그린 플러그드’에서 형님과의 협연은 감개무량했습니다.(염승식, 이하 염)

▲ 같이 공연하면서 ‘승식이가 록을 제대로 하는구나’라고 느꼈지. 3년 전 KBS 2TV ‘톱밴드’에서 게이트플라워즈를 눈여겨봤지만, 실제 연주를 보니 마치 블랙 사바스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더라고.(전인권, 이하 전)

-- 제가 블랙 사바스를 엄청 좋아해서 몸 둘 바를…. 하하. 지난해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 들국화 무대를 보며 ‘템포가 느리면 리듬감이 떨어진다’는 제 고정관념이 깨졌는데요. 템포 있는 곡이 아닌데도 형님은 오른손으로 무릎을 치며 노래하시던데 박자를 엄청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았습니다.(염)

▲ 난 외국곡을 카피해볼 때도 리듬 폭을 최대한 넓히는데 이런 연습은 밴드에게 굉장히 중요하지. ‘쿵딱 쿵쿵따닥’ 등 리듬에도 모양이 있거든. 밴드에서 정확한 비트를 살리는 건 드럼인데 이번 전인권밴드 앨범에선 (드러머) 신석철이 그걸 잘 받쳐줬어.(전)

-- 신석철 선배님은 이번 앨범에서 전곡의 기타 연주도 하셨는데요. 또 전인권밴드에는 기량이 대단한 분들이 모였습니다.(염)

▲ 석철이가 드럼 잘 치는 건 알았지만 유튜브에서 기타 치는 영상을 보고서 전주부터 반했어. 지미 헨드릭스가 사이키델릭한 연주를 하지만 석철이는 광란 기타가 아니라 사람 몸살 나게 하는 절제력을 갖고 있더라고. 베이시스트 민재현은 21살 때 보자마자 ‘넌 당장 일본의 안전지대 들어가도 베이스 끝내주게 치겠다’고 했던 친구야. 정말 힘이 된 건 드럼과 베이스지.(전)

-- 드럼과 베이스를 근간으로 한 비트의 중요성을 고집하셔선지 형님 앨범은 안정적이면서도 파워풀합니다. 들국화가 가진 리듬을 캐치하고 싶은 적도 많았거든요. 그 핵심적인 리듬을 후배 뮤지션이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또래들은 빠르게 달리려고만 하는데 감동이 별로일 때도 있거든요.(염)

▲ 허허. 승식이가 ‘신나게’ 똑똑하네. 나도 이번에 노래할 때 이 친구들의 훌륭한 드럼과 베이스에 피해가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 팀워크를 통해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게 음악의 재미인 것 같아. 요즘도 이번 앨범을 듣는데 이렇게 오래 내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전)

-- 세상을 떠나신지 1주기가 다가오는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선배님도 대단한 연주자셨죠. 들국화도 당시 록그룹과 사운드가 달랐습니다.(염)

▲ 주찬권은 머리가 좋았어. 곡을 빠르게 이해하고 한방에 다 끝냈으니까. 엔지니어가 놀랄 정도였지. 당시 제작자들은 투자한 돈을 빨리 뽑아내려 급하게 녹음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우린 찬권이 덕에 14프로(약 50시간)만에 전 앨범을 다 녹음했으니까.(전)

염승식은 인터뷰 전날까지 전인권밴드 앨범을 수차례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들국화 앨범의 연장선이라고 여겼지만 록을 근간으로 포크, 블루스 등으로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형님의 보컬이 전성기 시절을 능가하는 것 같다”며 “훨씬 더 자유로우면서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라고 감탄했다. 그러자 전인권은 “난 너희 음악도 좋다. 보컬 (박)근홍이를 보니 (김)현식이 같은 소리가 나오더라”고 칭찬했다.

-- 이번 앨범에서 형님이 8곡을 작곡하고 정원영 선배님이 3곡을 만드셨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셨나요.(염)

▲ 합주로 녹음했는데 구성원 각자가 자기 파트를 완벽하게 해냈어. 난 곡을 만들고 노래 연습도 확실하게 해갔지. 정원영은 녹음실에서 ‘형 이거 만들었어요’라고 줬고 난 3일 만에 가사를 써서 노래도 한 방에 끝냈어. 모두 그전에 기초를 쌓고 계속 연습해서 한 번에 죽 부르고 몇 군데만 고쳐 완성했지. 정말 편하게 작업했어.(전)

-- 2004년 ‘걱정말아요 그대’를 듣는데 마치 제게 해주시는 말씀 같았어요. 이번 앨범에서도 형님이 11곡 전곡의 가사를 쓰셨는데 인생을 돌아보듯 관조적인 노랫말에서 공감의 폭이 컸습니다.(염)

▲ 내가 과거에 사고를 좀 많이 쳤으니까. 허허. ‘내가 왜 서울을’, ‘들리는지’, ‘오늘’ 등 지난 시간의 아픔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서로 이해하자는 마음을 담은 거지. ‘내가 왜 서울을’에는 록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 우리의 입장을 얘기하고 싶었어. 마지막 부분 ‘그 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란 가사는 아픔과 스스로 화해해 자기 안에 담자는거지.(전)

-- 들국화도 인디에서 출발해 주류 시장에서 폭발력을 가졌는데요. 여전히 저희 같은 밴드들이 록 음악을 하는 건 녹록지 않습니다. 게이트플라워즈도 음악적으로 정립할 부분이 있고 우리를 더 많이 알려야 하는 숙제가 있거든요.(염)

▲ 정립이란 게 정말 중요한 얘기야. (블루스 뮤지션인) 블라인드 윌리 존슨, 리드 벨리 같은 뮤지션들이 본질부터 파고들어가는 음악으로 정립해 놓은 게 있듯이. 밴드는 리듬의 정립이 잘 돼야 하는데 그럴 때 중요한 건 비트지. 비트의 정확도를 갖고 가면 박자 감이 좋아져 크게 동요되지 않고 매 무대 승리하며 연주할 수 있거든.(전)

-- 결국 밴드에게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형님은 음악적으로 대단한 역할 모델입니다. 안전하게 가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고 계속 도전하게 해주시니까요.(염)

▲ 밴드는 애환이 있어. 힘들지. 자기 세계 안에서 스트레스가 엄청나거든. 그래도 도전은 계속 해야지. 우리 밴드도 추운 모스크바에 가서 꽁꽁 싸매고서 ‘내가 왜 서울을’을 한번 불러보고 싶어. 우리 시대에는 밴드 연주자를 등한시하고 록을 한다면 비주류로 쳤지. 하지만 비주류의 시선이 더 정확할 수도 있어. 록 하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옳은 것을 강력하게 말하자는 거야. 우리 록 시장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록은 발전할 수밖에 없거든.(전)

-- 산타나가 과거 ‘슈퍼 내추럴’ 앨범에서 젊은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했는데, 형님도 지난해 원더걸스의 예은 씨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 협연해 의외였는데요.(염)

▲ 예은이가 같이 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처음엔 폼 나게 남자끼리 협연하고 싶었지. 예은이가 대학로 클럽에 연습하러 왔는데 우리 노래가 본인 음높이와 안 맞는데도 ‘걱정 마시라’며 저음으로 튀지 않게 노래하는 거야. 연습 방식이 빠르고 철저했어. 예은이의 이번 솔로 앨범도 결국 록이야. 정말 잘 만들었지.(전)

-- 요즘에는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시나요.(염)

▲ 아침에 일어나 록 비트를 내 몸으로 타는 연습은 꾸준히 해.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소리가 오버 없이 무척 견고해. (영국 밴드) 킹 크림슨 앨범도 듣는데 이들은 차 지나가는 소리도 리듬·음악으로 듣는 사람들이지.(전)

-- 백건우와 킹 크림슨은 갭이 너무 큰데요? 하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염)

▲ 과거 (한국무용가) 이매방 선생과 제주에서 같이 공연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 친구가 전인권’이라고 소개하자 그분이 ‘난, 나밖에 몰러~’라고 하시더라고. 그 말씀이 진짜 멋있고 충격적이었어. (국악 기반 퓨전 밴드) 잠비나이 같은 팀도 정말 좋던데, 모두 자기만의 것을 갖고 있으니 그걸 잘 살려야 해. 그래서 대중음악은 어렵지.(전)

전인권밴드는 현재 ‘2막 1장’이란 타이틀로 투어를 펼치고 있다. 오는 11~12일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공연이 남아있다.

전인권은 “사실 지난달 대구 공연 때 객석이 다 차진 않았는데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며 “음악적으로는 요즘처럼 희망적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난 앞으로 20년을 본다. 10년 더 음악하고 10년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자 염승식이 손사래를 쳤다.

”(블루스의 거장) 비비킹처럼 80세가 넘어도 음악하셔야죠.”(염)

”승식이가 얼마 전 밤 11시에 술 마시고서 ‘좋아한다’고 문자 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 허허. 그리고 해마다 명절이면 갈비, 버섯 이런 거 보내주는 것도 너무 감동이야. 응원해주는 만큼 노력해볼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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