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가 1~5위 독점…박수근 ‘빨래터’ 6위로 밀려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작품이 27일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김환기 작품이 한국 미술품 경매가 상위 1~5위를 독점하게 됐다.이날 경매 결과는 김환기가 국내 대표 화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한편 세계 경매시장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저녁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김환기의 ‘12-V-70 #172’는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가인 63억2천626만원(4천15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이는 지난 6월 28일 케이옥션 여름경매에서 김환기의 또 다른 작품 ‘무제 27-VII-72 #228’이 세운 국내 미술품 최고가 기록인 54억원을 불과 5개월 만에 경신하는 한편 그 액수를 10억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다.
이로써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1~5위를 모두 김환기가 독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1~5위를 차지한 작품의 합산 낙찰총액만도 215억원에 이른다.
다섯 작품 모두 대형 사이즈의 전면점화로, 3위는 1970년작 ‘무제’(48억6천750만원), 4위는 1971년작 ‘19-Ⅶ-71 #209’(47억2천100만원), 5위는 1971년 작 ‘무제 3-V-71 #203’(45억6천240만원)이다.
그동안 5위를 지킨 박수근의 ‘빨래터’(45억2천만원)가 6위로 밀려나면서 명실공히 ‘김환기의 가장 큰 경쟁자는 김환기’인 상황이 된 셈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김환기의 상징 격인 푸른색 전면점화가 아닌 노란색 전면점화라는 점도 특징이다.
김환기의 푸른색 전면점화를 가리키는 ‘환기 블루’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김환기의 예술세계에서는 푸른색이 대표작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애초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경매에서 최고가 경신은 어렵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관측을 깨고 노란색 전면점화가 최고가를 차지하게 됐다.
서울옥션은 “노란색 전면점화는 점, 선, 면과 색감을 동시에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라며 “김환기 화백의 점화 중에서도 그 색감 측면에서 희귀한 특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환기 화백이 국내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가라는 점도 그의 신기록 행진의 한 배경이다. 동양적 전통을 견지하면서도 파리와 뉴욕 생활을 통해 습득한 서구미술을 접목해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되는 그의 작품은 동시대 다른 여러 작가 가운데서도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6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미술대학 교수와 미술 평론가, 큐레이터 등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추천받은 결과에서도 김환기가 14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세계 미술시장에서 추상화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증가와 ‘단색화’로 대변되는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김환기에 대한 재평가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세계적으로 미술관 수가 늘어나고 저금리 시대로 미술품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도 가격 상승의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국내 수요만으로는 이같이 높은 가격에 경매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서다.
서울옥션은 “국제 미술시장에서 김환기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미술계에선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국 화가들에 대한 국제 미술시장의 재평가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서보, 정상화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최고가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한 갤러리 대표는 “해외 작가들의 거래가를 보면 아직도 한국 화가들은 저평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화랑들은 소속 작가 작품을 파는 한편 시장에 나온 단색화가의 작품을 모으는데도 매달리고 있다”며 “김환기 작품이 오르면 그 뒤를 따라 다른 화가들의 작품 가격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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