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통을 車로 바꾸는 한민족의 神技

드럼통을 車로 바꾸는 한민족의 神技

입력 2010-09-18 00:00
수정 2010-09-1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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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캐딜락을 타다】 전영선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전쟁통에 쏟아져 나온 군용 폐차를 불하받아 망치로 드럼통을 펴서 버스, 트럭, 합승택시를 만드는 ‘군용 폐차 재생시대’를 맞은 것이다. 부숴진 군용차 부속품들과 드럼통, 산소용접기, 망치들이 천막 속으로 들어간 후, 며칠 만에 자동차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본 미군들은 깜짝 놀라며 한국 사람들은 신기(神技)를 가졌다며 감탄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올라 선 한민족의 근성과 재주는 이렇게 싹이 텄다. 한국 자동차 110년간의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는 ‘고종 캐딜락을 타다’(인물과사상사 펴냄)가 알려주는 사실이다. 연간 350만대의 자동차 생산,그 중 214만대를 수출, 국내 등록 자동차 대수 176만대. 명실상부 ‘자동차 대국’으로 올라선 우리나라의 시작은 소박했다.

글쓴이는 유명한 자동차 마니아. 30년간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한 뒤 18년째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를 운영해오고 있는 전영선씨다. 그가 50년간 쌓아온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풀어낸 책은 우리나라 자동차의 모든 것을 담은 역사서에 다름 아니다.

역사서라 했지만 딱딱하지 않다. 1899년 4월 서울 장안에 전차가 처음 등장한 이래 자동차가 근대화, 산업화의 역군이 되기까지, 자동차에 얽힌 다양한 일화와 인물들의 사연은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중간중간 삽입돼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사진들 또한 매력이 철철 넘친다.

첫 장에 나오는 전차 이야기부터 흥미를 유발한다. ‘쇠 당나귀’로 불리며 전차가 미움을 샀던 것은 비싼 차비도 한몫했다. 자장면 한 그릇이 3전이던 시절 전차를 타려면 5전이 필요했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집 자식들의 허세는 똑같은 듯. 부잣집 도령들은 하릴없이 하루종일 전차를 타고 노닥거려 울화를 치밀게 만들었다. 지금의 해외여행처럼 부모님을 위한 ‘효도 전차계’가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동차를 탄 사람은 고종. 형편이 안 된다며 본인은 만류했지만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40년간 권좌를 지켜낸 임금이 대견했는지 신하들의 강한 권유로 4인용 자동차가 수입됐다. 책 제목에는 캐딜락이라고 표현했지만 저자는 1920년 당시 포드나 캐딜락은 4인용 자동차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유럽에서 들여왔을 거라고 결론짓고 있다.

최초의 국산 자동차는 누구의 손에서 빚어졌을까. 바로 최무성 형제다. 재료는? 역시 드럼통이었다. 그뿐 아니다. 자동차 엔진을 처음 만든 김영삼, 드럼통을 펴서 만든 버스를 수출까지 한 하동환, 양키트럭을 개조해 국산 승용차 2호 ‘신성호’를 만든 김창원, 기아산업의 창업자 김철호, 현대자동차 왕국의 주춧돌을 놓은 정주영까지 자동차 신화를 쓴 개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가슴 뻐근한 자부심과 감동을 준다. 1만 5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10-09-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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