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그들… 낯선 글들…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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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2-12 00:00
수정 2014-02-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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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안 알려진 작품 번역… 문학총서 ‘제안들’ 세계문학 새 지평 열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는 2007년 독일의 한 문학 평론가에게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꿈’이란 책을 읽어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카프카가 꿈에 대해 쓴 일기, 편지, 메모, 단편 등을 엮은 것으로 그가 직접 꾼 꿈의 묘사, 그가 꿈꾸길 원했던 현상들이 쓰인 내밀한 기록들이다. 카프카를 거세게 압박했던 꿈이 어떻게 문학으로 가공됐는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 출판사가 기획해 펴낸 것을 독일의 출판사가 거꾸로 편집권을 사서 재출간한 책이다. 이 책을 본 배 작가는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카프카의 사적인 기록이 대부분이라 작가의 다른 면을 엿볼 수 있어요. 또 꿈을 정신분석의 대상이 아닌 문학의 대상으로 삼아 그가 꿈을 어떻게 문학으로 끌어 왔는지 관찰할 수 있는 매혹적인 책이었죠. 하지만 누가 관심을 갖겠나 싶어 오랫동안 혼자만 알고 있었어요.”

배 작가가 7년간 혼자만 품고 있던 카프카의 ‘꿈’이 최근 출간됐다. 작가, 시인, 편집자, 번역가들이 아끼던 낯선 작품, 낯선 작가들을 한데 모은 문학총서 ‘제안들’(워크룸 프레스)의 1권이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조르주 바타유(1897~1962)의 ‘불가능’, 영국의 문필가 토머스 드 퀸시(1785~1859)의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이 두 번째, 세 번째 ‘제안’으로 소개됐다.

열린책들 유럽문학팀장 출신인 김뉘연 편집자가 기획한 ‘제안들’은 기존 국내 출판시장의 ‘세계문학 리스트’에 대한 편집자와 번역가들의 문제의식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세계문학이란 말 자체가 오염된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세계문학 출간 목록을 보면 대부분의 출판사가 인기 작가, 잘 팔리는 작품 등만 골라 경쟁적으로 내다보니 중복 출간이 많았다. 훌륭한 판본이 나오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책들이 묻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과연 그게 독자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김뉘연 편집자)

“2000년대 초부터 번역을 시작했는데 출판사끼리 겹치는 콘텐츠도 많고 세계문학 출판계의 발전이 더디다는 판단이 들어 불만이 컸다. 그래서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의뢰하는 작품만 하다 요즘에는 직접 기획해 의뢰한다. 추천작 10개 가운데 7개는 출간이 받아들여지고 있다.”(성귀수 시인)

이런 문제의식 아래 불문학 전공자인 편집자와 번역가들이 함께 뭉쳤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 또는 잘 알려진 작가의 낯선 작품, 마땅히 소개돼야 함에도 국내 번역본이 없는 작품을 소개하자.’ ‘제안들’의 작품 리스트가 만들어진 기조다. 현재까지 확정된 목록은 10권. 책에 매료된 번역가들이 손수 번역 작업을 거쳤다. 배 작가가 카프카의 ‘꿈’을, 성 시인은 바타유의 ‘불가능’을 추천해 우리말로 옮겼다. 김예령·엄지영 번역가가 각각 추천한 나탈리 레제,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다. 소설, 산문, 시, 비평, 전기, 일기, 편지 등 장르의 경계는 텄다. 천편일률적인 번역 후기는 지양한다. 배 작가가 카프카의 ‘꿈’ 번역 후기로 단편소설을 들여보낸 게 한 예다.

총서는 30권으로 마무리된다. 김 편집자는 “새로운 결을 품은 문학총서로, 엄선됐다는 느낌을 주고 싶기 때문”라며 “마지막 책이 출간되고 나면 책과 책, 작가와 작가가 하나로 연결되는 지형도가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1. 꿈(프란츠 카프카, 배수아) 2. 불가능(조르주 바타유, 성귀수) 3.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토머스 드 퀸시, 유나영) 4.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나탈리 레제, 김예령) 5. 무의 연속(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엄지영) 6. 산문집(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7. 이아생트(앙리 보스코, 최애리) 8.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결혼식/오페레타(비톨트 곰브로비치, 정보라) 9. 생전 유고/어리석음에 대하여(로베르트 무질, 신지영) 10. 사형수/곡예사(장 주네, 미정)

작품(작가, 번역가)
2014-02-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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