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SF,1950년대 소련 영향받아 태동
‘낙지언어 해독’ 대량포획기술 개발 등
현실·과학에 근거한 환상의 세계 그려
주요 장르로 성장 불구 ‘체제’에 갇혀
환상적 삶 누리는 일상 등 형상화 안 해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서동수 지음/소명출판/377쪽/2만 9000원
지구공학기사 철수와 지질학자 숙희는 북한 지구공학연구소에서 일하며 서해를 육지로 만드는 꿈을 꾼다. 미국 스파이 석호는 철수와 숙희를 시기하던 방사연구실장 달호를 부추겨 꿈을 좌절시키려고 한다. 과학평의회가 철수의 ‘서해개조’ 사업을 지지하면서 둘은 ‘희망호’를 타고 서해를 탐사하지만 이상한 빛을 띠는 물체의 공격을 받아 실패한다. 미국 잠수함의 짓이었다. 연구소는 비밀리에 또 다른 탐사선 ‘돌격호’를 제작하고 마침내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반응물질’을 발견한다. 미국이 방해하지만 북한 경비대가 전투 끝에 잠수함을 침몰시키고, 철수와 숙희는 서해를 육지로 개조하는 데 성공한다.
희망호나 돌격호, 서해 개조 등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줄거리를 지닌 이 작품은 1965년 11회에 걸쳐 북한 ‘아동문학’에 연재됐던 공상과학소설(SF)인 ‘바다에서 솟아난 땅’이다. 북한에도 SF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역사도 깊고 작품도 다양하다.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는 북한에서 SF를 지칭하는 ‘과학환상문학’의 형성 과정과 특징, 작품들 속에 드러난 유토피아를 탐색한다. 저자인 서동수 상지대 교수는 1950년대부터 인공지능(AI) 로봇을 다룬 최근 작품까지 100여편을 분석했다.
북한 SF는 1950년대 소련 과학소설의 영향에서 태동했다. 당시만 해도 소련은 선진적인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6·25 전쟁 후 사회주의 국가로 막 걸음마를 하던 북한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서 교수는 북한이 SF 창작을 적극 지원하면서 1960년대 탈소련화를 거친 ‘과학기술 강국’의 도구로 삼았고, 1980년대 최전성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SF 작가 황정상 등 일군의 작가들이 뜨면서 주요 장르가 됐다.
북한 SF가 그리는 미래는 그 경계가 뚜렷하다. 북한에서 과학은 절대적으로 체제에 복무하는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건 ‘인식교양적 의의도 없는 공허하고 막연한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북한의 SF소설은 역사와 과학발전의 합리성에 기초한 ‘근거 있는 과학적 환상’을 그려내는 경향이 짙다. 예컨대 낙지 언어를 해독해 대량포획 기술을 개발하고(‘로케트를 부르는 전파’), 비행선을 통해 전력을 무한 공급받고(‘번개잡이 비행선’), 유전공학을 이용해 거대 작물을 생산하며(‘레일의 언덕’), 750년 동안 사계절 입는 옷을 발명하고(‘사시절 입는 옷’), 인공태양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여러 종의 과일을 먹는 사회(‘무지개 비낀 도시’) 등이 대표적이다.
SF가 제시하는 현실에 근거한 환상의 세계가 바로 북한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로 귀결된다. 북한 과학자들은 미국과 일본의 방해에도 매번 새로운 발명품을 완성한다. 외계인을 감복시켜 북한 지원세력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작품은 과학적 성과를 달성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상당 부분 할애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특징이 바로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한 과학 기술’은 그려지지만 ‘유토피아의 삶을 누리는 인민들의 일상’은 SF에서는 부재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작품 구조는 북한의 수령 단일 체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체 사상과 마찬가지로 SF 속 미래에도 체제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백두혈통의 지도 체제는 그대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을 지킨다.
북한 문학의 빈칸인 SF 장르를 연구해 온 저자는 “오랜 기간 주요 문학 장르로 성장했지만 북한 SF는 체제라는 한계 속에 갇혀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작가들의 ‘상상력 로켓’은 결국 체제라는 견고한 ‘대기권’을 뚫기에는 한없이 버거웠던 셈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낙지언어 해독’ 대량포획기술 개발 등
현실·과학에 근거한 환상의 세계 그려
주요 장르로 성장 불구 ‘체제’에 갇혀
환상적 삶 누리는 일상 등 형상화 안 해
1963년 ‘아동문학’ 8월호 본문 삽화. 1950년대 탈소련 움직임 이후 이어진 과학정책 강조 기조에 따라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환상문학이 잡지에 활발히 게재됐다. 소명출판 제공
지구공학기사 철수와 지질학자 숙희는 북한 지구공학연구소에서 일하며 서해를 육지로 만드는 꿈을 꾼다. 미국 스파이 석호는 철수와 숙희를 시기하던 방사연구실장 달호를 부추겨 꿈을 좌절시키려고 한다. 과학평의회가 철수의 ‘서해개조’ 사업을 지지하면서 둘은 ‘희망호’를 타고 서해를 탐사하지만 이상한 빛을 띠는 물체의 공격을 받아 실패한다. 미국 잠수함의 짓이었다. 연구소는 비밀리에 또 다른 탐사선 ‘돌격호’를 제작하고 마침내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반응물질’을 발견한다. 미국이 방해하지만 북한 경비대가 전투 끝에 잠수함을 침몰시키고, 철수와 숙희는 서해를 육지로 개조하는 데 성공한다.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는 북한에서 SF를 지칭하는 ‘과학환상문학’의 형성 과정과 특징, 작품들 속에 드러난 유토피아를 탐색한다. 저자인 서동수 상지대 교수는 1950년대부터 인공지능(AI) 로봇을 다룬 최근 작품까지 100여편을 분석했다.
북한 SF는 1950년대 소련 과학소설의 영향에서 태동했다. 당시만 해도 소련은 선진적인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6·25 전쟁 후 사회주의 국가로 막 걸음마를 하던 북한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북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환상문학 잡지 ‘아동문학’ 1963년호 뒷표지. 소명출판 제공
북한 SF계 대표작가 황정상의 ‘푸른이삭’. 소명출판 제공
한광남의 ‘최첨단 1번수들’. 소명출판 제공
김동섭의 ‘로보트-승리호’의 단행본 표지. 소명출판 제공
북한 SF가 그리는 미래는 그 경계가 뚜렷하다. 북한에서 과학은 절대적으로 체제에 복무하는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건 ‘인식교양적 의의도 없는 공허하고 막연한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북한의 SF소설은 역사와 과학발전의 합리성에 기초한 ‘근거 있는 과학적 환상’을 그려내는 경향이 짙다. 예컨대 낙지 언어를 해독해 대량포획 기술을 개발하고(‘로케트를 부르는 전파’), 비행선을 통해 전력을 무한 공급받고(‘번개잡이 비행선’), 유전공학을 이용해 거대 작물을 생산하며(‘레일의 언덕’), 750년 동안 사계절 입는 옷을 발명하고(‘사시절 입는 옷’), 인공태양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여러 종의 과일을 먹는 사회(‘무지개 비낀 도시’) 등이 대표적이다.
SF가 제시하는 현실에 근거한 환상의 세계가 바로 북한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로 귀결된다. 북한 과학자들은 미국과 일본의 방해에도 매번 새로운 발명품을 완성한다. 외계인을 감복시켜 북한 지원세력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작품은 과학적 성과를 달성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상당 부분 할애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특징이 바로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한 과학 기술’은 그려지지만 ‘유토피아의 삶을 누리는 인민들의 일상’은 SF에서는 부재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작품 구조는 북한의 수령 단일 체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체 사상과 마찬가지로 SF 속 미래에도 체제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백두혈통의 지도 체제는 그대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을 지킨다.
북한 문학의 빈칸인 SF 장르를 연구해 온 저자는 “오랜 기간 주요 문학 장르로 성장했지만 북한 SF는 체제라는 한계 속에 갇혀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작가들의 ‘상상력 로켓’은 결국 체제라는 견고한 ‘대기권’을 뚫기에는 한없이 버거웠던 셈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05-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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