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막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 아웅틴툰 인터뷰
이주민 120만명 시대. 이젠 ‘다문화’ 담론도 식상할 정도다.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다문화 행사를 유치한다. 하지만 정작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4일부터 서울 대학로 CGV에서 열리는 ‘이주노동자영화제’(MWFF)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주민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그들의 애환을 담으려는 취지다. 우리의 그림자나 다름없었던 그들이지만, 적어도 영화 안에서는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제의 슬로건도 ‘그림자에서 인간으로’다.아웅틴툰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
하지만 그를 맞은 것은 18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은 계속됐고, 하루에 불과 4~5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그래도 짬짬이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고 차별을 받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찾았다.
그는 현재 이주노동자방송인 MWTV 등에 몸담으며 미디어 및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법적으로 ‘인도적 지위’를 인정 받고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18살 이후로 고향을 한 번도 찾지 못했다.
본인이 노동 현장에서 직접 일을 했던 만큼 아웅틴툰 위원장은 그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MWFF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의 생생한 생활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불법 체류자, 불쌍한 사람, 암묵적 범죄자예요. 영화제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불법 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단순히 동정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리고 싶고요.”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하필 영화인가요?”라는 물음에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딱딱하잖아요.”라며 웃는다. 한국인과 이주민의 관계가 문화적 맥락으로 얽혀있는 만큼 문화의 꽃인 영화를 통해 표현해 보고 싶었다는 것.
자부심도 대단했다. 전세계에서 이주민들이 직접 영화제를 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올 정도다. 일본이나 프랑스의 영화제에서 MWFF에서 상영된 영화를 출품해 달라는 연락도 받았다. “이주민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작품도 있어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작품이죠. 다만 중요한 건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거예요.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 우리가 직접 소통의 장을 마련해 전하는 거니까요.”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문화적 차이’에 주안점을 뒀다고 했다. 이주민은 물론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얘기라고 했다. 개막작부터 이런 의도가 묻어난다. 이주민들이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겪었던 에피소들을 묶어 43분짜리 단편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필리핀에서는 인사를 할 때 서로 껴안고 뽀뽀를 하는데, 이주 여성들이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했다가 혼이 났던 이야기, 버마에서는 어른들 앞에서 팔짱을 끼는 게 존경의 표시인데 역시 그런 식으로 했다가 주변을 당황시켰던 에피소드 등이 담겨져 있어요. 이런 사소한 문화 차이가 오해를 부르기도 하잖아요. 차별이라는 거대한 문제보다 소소한 것부터 해결하고 싶었어요.”
일반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아웅틴툰 위원장은 올해 초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영화 ‘의형제’ 상영 계획도 세웠다. 감독의 허락도 받았다. 영화에 베트남 이주 노동자들의 삶이 담겨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부 논의를 거쳐 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주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제 일정이 이틀밖에 안 되다 보니 시간 제한이 있었어요. 너무 작위적으로 상업영화를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고요.”
고민도 많았다. 역시 돈 문제다. 2008년 이후 이주민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었다. 자연히 영화제 예산도 줄고 규모도 축소됐다. 홍보나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영화제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당연히 레드 카펫 깔아가면서 영화제 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고 고민했으면 좋겠지만 여건이 안 된다는 게 아쉽습니다.”
총 23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영화제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림자 인간’, 이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이주의 시선’,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나비의 노래’, 이주 아동 문제를 다룬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아이들’, 문화적 차이를 다룬 ‘문화공감’ 등 5개 섹션이 준비돼 있다. 이틀간의 영화제가 끝나면 지방이주민을 위한 지역 상영회로 분위기를 이어간다. 경기 남양주 마석을 시작으로 김포, 포천, 안산, 고양, 부천 등 외국인 이주자가 많은 곳에서 열린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홈페이지(www.mwf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홍지민·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9-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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