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알린 권태교씨 아내 강모씨의 고통
2007년 서울 시내버스 회사의 요금 횡령을 언론에 알린 권태교(54)씨는 “이 사람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12일 서울신문이 만난 권씨의 아내 강모(65)씨는 시종일관 권씨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강씨는 “철저한 준비 없이 돈도 많고 힘 있는 버스회사에 맞선 남편이 몸과 마음을 많이 다쳤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야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정비되고 제보자를 지원하는 단체도 많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는 체계도 잘 잡혀 있지만 당시엔 그렇지 못했다”면서 “당시에는 나도 남편도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편이 덜컥 언론사에 제보를 해서 깜짝 놀랐다. 시내버스 회사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회사의 요금 횡령을 목격하고 공익 제보를 결심한 권씨를 말리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경찰과 서울시청, 감사원 등이 버스회사의 운임에 대한 횡령 증거를 충분히 밝혀내지 못했다. 강씨는 이로 인해 흐트러져 가는 남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울시의 담당 계장이 아내가 암에 걸렸다며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확인해 보니 부인이 암에 걸리지도 않았더라”면서 “버스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물러난 것 같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급기야 서울시가 버스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하고, 공익 제보를 했던 권씨는 그때부터 사회에서는 실업자, 회사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채 3년 6개월의 기간을 지내야 했다.
울화를 잘 참지 못하는 남편을 돌볼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그는 제보 직후부터 일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을 대신해 두 사람의 생활비를 대는 한편 불 같은 성격의 남편이 행여 잘못된 생각이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봤다. 강씨는 “남편이 한 달 넘도록 매일 시청에 나가 1인 시위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씨는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달려가는데 아내가 붙잡으며 ‘죽지 말고 우리 끝까지 이 문제를 밝혀내자’고 설득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날 이후 강씨는 남편이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몰래, 혹은 손을 잡고 따라다녔다. 남편이 산에 간다고 하면 몰래 따라 나가 그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으려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남편이 술을 마시러 나간다고 하면 가급적 나가지 못하게 했다. 남편이 술자리에 나가면 강씨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권씨는 현재 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다. 여론의 주목을 받아 공익 제보자로 인정돼 복직된 것이다. 하지만 강씨는 아직도 남편이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남편이 가끔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큰 소리로 잠꼬대를 하거나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권씨는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면서도 “그동안 옆에서 지켜본 아내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이어 “앞으로 남은 삶을 아내에게 보답하면서 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씨는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만일 그때로 돌아간다면 말리고 싶지만 말려도 안 되는 사람이니까 더 조심하고 준비 된 뒤에 공익 제보를 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털어놨다.
2014-01-1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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