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의 손익계산서
29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중도 사퇴는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 간 역학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김문수 경기도지사
여권에 참패를 안긴 6·2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친이계 내부에서 ‘박근혜 대항마’로 떠오른 김 지사에게 김태호 카드의 급부상은 적지 않은 부담 요인이었다.
개각 발표 직후인 지난 9일 김 지사가 경기도청 월례조회에서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불만의 표출로 풀이됐다. 김 지사는 이날 김 후보자의 중도사퇴와 관련,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말을 아꼈다. 한 친이계 재선의원은 “김 지사가 더 이상 왈가왈부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대권경쟁 구도 혼선에 따른 걱정을 덜어냈다. 그동안 친박계 내부에서는 김 후보자의 발탁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권구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는 게 아니냐.”며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에 따라 지난 21일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정권 재창출’을 약속한 것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낙마는 이런 의심을 일정부분 씻어냈다. 친박계 한 의원은 “청와대가 임명 강행 의지를 내비쳐 걱정이 컸는데 이제라도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지명 때와 같이 이번에도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고만 말했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이번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실익이 교차했다. 그는 국무총리 및 장관 후보자 3명이 낙마할 정도로 ‘빡빡한’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낙마로 ‘김태호 총리, 이재오 특임장관’이라는 기존의 구도가 깨진 것이 이 특임장관의 향후 행보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6·2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몽준 전 대표와 ‘신승’(辛勝)한 오세훈 서울시장 등은 잠재적 경쟁자였던 김 후보자의 도태가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자유로운 경쟁 체제가 이뤄지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 측도 “정치인이 자신이 보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까지 국민의 정서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 계기였다.”고 논평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2010-08-30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