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아파트’, 어떻게 지었고 누가 어디 사나>

<’평양 아파트’, 어떻게 지었고 누가 어디 사나>

입력 2014-05-29 00:00
수정 2014-05-2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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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정 직후 건설 시작…입주 후 취향 따라 인테리어 공사평양의 ‘강남’은 서평양 지역…직업군별로 거주지역 달라

“너희 집 어디냐?”

평양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같은 또래의 누군가를 처음 만나 서먹한 분위기가 사라질 때쯤이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다.

어느 구역, 어느 거리에서 사는지를 알면 그의 부모 직업이나 집안의 경제력을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발생한 평천구역 안산1동 23층짜리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평양의 아파트 거주 문화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붕괴한 아파트가 있던 안산1동은 낙원백화점, 창광원 등 편의시설과 매우 가까워 이른바 ‘괜찮은’ 지역에 속하며 이 지역에는 우리의 경찰 격인 인민보안부 간부들이 주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1950년대부터 시작된 평양시 아파트 건설

평양시 중심부에서는 단독주택을 가진 최고지도자 일가와 노동당 비서급, 내각 총리급 등 극소수의 고위 간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민이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1970년대까지는 5층짜리 연립아파트와 기껏 10여 층짜리 아파트만 있던 평양에 1980년대부터는 20∼4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북한은 휴전협정 사흘 후인 1953년 7월 30일 열린 내각 전원회의에서 평양시 복구 건설과 관련한 내각 결정을 채택하고 평양시 아파트 건설에 착수했다.

김일성 주석의 직접적인 지휘와 격려에 힘입어 북한의 건설노동자들은 1950년대 말 14분 만에 주택 한 채씩 조립하는 ‘평양 속도’를 창조하며 1970년대 초까지 조립식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이후 김 주석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 주석 생일 70주년인 1982년을 목표로 1970년대 말부터 대규모 상징 건축물과 함께 고층아파트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80년대 들어 고층 아파트로 꽉 채워진 창광거리 1단계 지역과 문수거리, 안상택거리, 청춘거리 등이 새로 건설되고, 천리마거리의 연립아파트가 고층아파트로 모두 바뀌었으며 1980년대 말까지 창광거리 2단계와 광복거리 1단계 건설이 완료됐다.

북한은 1990년 초반에도 최대 규모의 아파트단지인 광복거리 2단계와 통일거리를 새로 건설하며 ‘건설 불바람’을 일으켰지만 1990년대 후반 들이닥친 심각한 경제난으로 평양시내 아파트 건설은 한동안 주춤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아파트 건설이 재개돼 김정일 위원장 집권 말기인 2009년 말에는 평양시내 중심부에 고급아파트 단지인 만수대거리가 새로 세워졌다.

◇ 아파트 건설 목적 따라 입주 방식 달라

김정은 체제 들어 고층 아파트 건설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업적’ 부각을 위해 김정은 체제 출범 첫해인 2012년 김일성 동상 주변의 만수대지구에 초고층 아파트단지인 창전거리를 새로 건설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은하과학자거리와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자아파트가 완공됐으며 올해 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을 목표로 위성과학자거리와 김책공업대학 교육자아파트를 한창 건설하는 중이다.

이처럼 최고지도자의 직접적인 관심 속에서 정책적으로 건설되는 아파트의 입주 방식과 중앙부처나 ‘힘있는’ 기관, 또는 개인이 주관해 짓는 아파트의 입주 방식은 다르다.

최고지도자 업적 과시용 아파트는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모두 갖춰놓은 상태에서 주민들이 입주하는 방식이지만, 개별적으로 건설되는 아파트는 벽면과 출입문, 창문, 전기선과 배수관 등 기본적인 건설만 끝난 상태에서 구매자에게 파는 방식이다.

이러한 아파트 입주 방식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전역에서 주택 암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생겼다. 아파트 구매자마다 인테리어에 대한 취향과 경제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아파트에 입주 후 벽지와 장판은 물론 싱크대와 세면대, 욕조 등 인테리어는 100% 입주자의 몫”이라며 “골격만 세워진 아파트를 산 뒤 각자 경제형편에 따라 1천 달러에서 최고 1만 달러까지 들여 인테리어를 완성한다”고 전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안산1동의 아파트도 이처럼 ‘골격’만 세워진 상태에서 입주한 92가구가 한창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붕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 방식은 다르지만 당국이 직접 건설하는 아파트든, 기관이나 개인이 개별적으로 짓는 아파트든 부실 공사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당국이 건설하는 아파트는 대부분 특정 기념일에 맞춰 ‘속도전’ 방식으로 진행되는데다 건설에 동원된 군인과 간부들이 건설 자재를 시장으로 빼돌리면서 시공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이나 개인이 짓는 아파트는 건설 담당자가 공사 원가를 낮추기 위해 싼 건설 자재를 사용하는데다 입주자들이 입주 후 인테리어와 함께 제각각 내부 구조변경 공사를 벌이면서 아파트에 충격을 가해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탈북자들이 전했다.

◇ 평양에도 ‘강남’ 있어…직업군별로 모여 살아

한강을 기준으로 서울에 강남과 강북이 있는 것처럼 평양도 대동강을 기준으로 대동강 서북쪽의 ‘서평양’ 지역과 대동강 동남쪽 ‘동평양’ 지역으로 나뉜다.

평양에서는 서울의 강남 격인 서평양 지역에 고위층과 부자들이 대부분 거주한다.

김정일 집권 때도 그랬고,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북한 당국이 서평양과 동평양 지역의 격차를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평양시민의 ‘서평양 환상’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아파트 매매가격에서 동평양 지역은 평균 1만∼1만5천 달러, 서평양 지역은 평균 3만∼5만 달러로 크게 차이 난다.

한편 대체로 직업군별로 모여 사는 것도 평양시내 아파트 거주 문화의 주요 특징이다.

보통문에서 고려호텔까지 이르는 중구역 창광거리, 보통문과 만수대의사당을 연결하는 만수대거리 아파트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일명 중앙당) 간부들만 거주할 수 있다. 중앙당 간부 전용 아파트는 최소 방 4개에 커다란 거실과 부엌, 화장실 등이 딸린 구조다.

특히 이 지역에는 노동당 부부장들만 모여 사는 ‘부부장 아파트’가 있으며 고려호텔 바로 옆에 세워진 30여 층짜리 ‘동흥동 장령아파트’는 군 장성 전용이다.

서성구역 긴재동·석봉동, 모란봉구역 긴마을동 등에는 인민무력부(우리의 국방부 격)를 비롯한 군 간부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최고지도자 경호부대인 호위사령부 장교 전용 사택은 대성구역 미산동에 있다.

평양의 주요 상류층인 돈 많은 북송 재일동포들은 천리마거리와 광복거리, 문수거리 등에서 퍼져 살기도 하지만 재일동포 사업가의 이름을 딴 안상택거리 주변에 주로 밀집해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장사와 무역 등으로 돈을 번 신흥부자들은 경흥거리를 중심으로 보통강구역 거주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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